콘스탄틴 안드레예비치 소모프(Konstantin Andreyevich Somov 1869~1939)는 누구보다도 로코코와 프랑스 화가 프라고나르, 그리고 와토를 좋아했다. 그리고 그의 그림은 소모프 특유의 위트로 가득하다. 밝고 명랑한 색채가 가득한 화면 속에 에로틱한 여인들이 장난스럽게 우리를 유혹한다.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미술 아카데미에서 저 유명한 레핀에게 배운 사람이다. 하지만 스승과는 이미 달라진 느낌을 보여준다.
그의 아버지는 미술 사학자이자 에르미타쥐 박물관의 큐레이터였고, 어머니는 음악가였다. 상류층이었던 그의 부모는 유화, 수채화 등 수많은 미술 작품을 수집했다. 이로 인해 많은 예술가들의 그의 집을 드나들었고 이러한 예술적이고 사교적인 분위기에서 소모프는 성장한다.
어린 시절부터 소모프는 18세기 미술과 음악에 큰 관심과 재능을 보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미술 아카데미에서, 그리고 일리야 레핀의 스튜디오에서 소모프는 체계적인 미술 지도를 받았다.
학창 시절 소모프는 훗날 러시아 발레단을 결성하여 세상을 뒤흔든 세르게이 디아길레프(Sergei Pavlovich Diaghilev)나 무대 디자이너인 레온 박스트(Léon Bakst)와 친분을 맺으면서 이전 과는 다른 새로운 예술 방향을 결정짓게 된다. 1896년쯤부터 그의 작품에서 18세기 복장을 한 신사나 숙녀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주류였던 사실주의 미술이 추구하는 이상과는 거리가 먼 시적인 이미지로서 점점 현실과 멀어지는 풍경에 집중하게 된다.
1890년대 말 러시아에서는 모더니즘 운동이 일어났다. 파리와 미국 등지를 여행하면서 국제적인 감각을 키운 소모프는 동료들과 함께 자신의 스승 그룹이었던 이동파를 과감하게 비판한다. '이동파는 예술을 사회사상에 종속시킨다' 라면서 스스로 '미술세계파'를 만든다. 브루벨, 보리소프 무사토프, 바크스트 등도 '미술세계파'의 일원으로 그들은 독창적인 미적 세계를 창조하며 20세기 초 러시아 미술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자 소모프는 고국을 떠나 파리로 가게 되었다. 파리에 도착한 이후, 그는 새로운 아름다움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다. 소모프는 화려하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자유롭게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젊은 시절 소모프는 프리고나르와 와토의 작품에 크게 매료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작품에 로코코적 느낌이 물씬 풍긴다. 소모프의 작품 속에는 와토의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면을 쓴 사람들이 자주 보이는데 조금 더 감각적이고 현대적인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섬세하고 우아하며 장식적인 느낌과 삶의 유희와 자유, 사랑의 유혹 등의 주제는 분명 로코코 미술의 특징으로 소모프가 로코코 미술에 큰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매우 뛰어난 소묘력을 지닌 화가였다. 그의 작품 속에는 그런 소묘의 기초 위에 가벼운 붓놀림과 풍부한 색채에서 전해지는 아름다움이 감탄을 자아낸다. 소모프의 상상 속 세상에는 사랑의 즐거움과 아름다운 세상 풍경으로 가득 차 있다. 나무들이 우거진 한가로운 숲길을 걸으며 속삭이듯 사랑을 노래하고, 사랑의 유희를 즐기는 주인공들의 몸짓이나 표정이 매우 다채롭다.
소모프는 파리와 미국을 무대로 활발한 활동을 하다가 파리에서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