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모처에서 추상미술 강의를 한 두어 시간 했더니 목이 쉬었다. 일주일에 50분 수업 20시간씩 할 때는 늘 목이 쌩쌩했는데 수업을 거의 하지 않으니 이제 일주일에 수업 90분 하는 것도 목이 쉰다. 참 사람 몸의 적응이 무섭다.
추상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신지학(神智學)’ 이야기를 잠시 했다. 살짝 놀라는 분위기다. 동양의 영향을 받은 ‘신지학’을 잠시 살펴본다.
신지학(Theosophy) 협회의 창립자 블라바츠키(Helena Petrovna Blavatsky 1831-1891)의 『베일을 벗은 아이시스』(1877)에는 ‘하늘의 수직성’과 그와 동등한 ‘땅의 수평적인 지평선’을 언급하면서 직각의 이론을 설명하는데, 수직선은 ‘남성적인 원리’와, 수평선은 ‘여성적인 원리’와 동등한 것으로 보고 있다. 블라바츠키의 설명에 따르면, “두 개의 선이 상호 교차하여 만들어내는 십자가는 생명과 불멸에 대한 유일하고 신비적인 개념을 나타낸다. 십자가가 완전한 사각형 안에 끼어 들어가면, 그것은 신비의 기본이 된다. 왜냐하면 신비의 영역 안에는 물리적이면서 정신적인 모든 학문의 문(門)을 열 수 있는 열쇠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저 유명한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 1872-1944)의 Composition시리즈에서 보는 수직과 수평의 교차, 그리고 직각은 그런 이론에서 비롯된 것이다.
몬드리안은 1909년에 신지학협회에 가입하였으며, 자신의 집에 블라바츠키 부인의 초상화, 슈타이너(Rudolf Joseph Lorenz Steiner, 1861-1925; 오스트리아 출신의 신지 학자)의 강연집, 크리슈나무르티의 책 등의 신지학 기념물품을 갖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또 한 명의 위대한 추상화가 칸딘스키(Wassily Wassilyevich Kandinsky 1866-1944)또한 이 신지학에 깊이 경도되어 있었다.
러시아의 그리스 정교도였던 칸딘스키는 신비주의, 정신주의, 일원론(一元論), 새로운 기독교, 넓은 의미의 종교인 신지학(神智學)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신지 학자인 루돌프 슈타이너의 저서 또한 칸딘스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1908년과 1911년 사이에 칸딘스키는 루돌프 슈타이너의 저서들을 읽고 주석을 달았다. 아마도 그는 궁극적인 정신세계가 대재난 이후에 나타날 것이라는 슈타이너의 신념을 믿었던 것 같다.
칸딘스키가 회화에서 사용한 색채와 선에는 신지 학자들의 신념이 수용되었다. 신지 학자들에 의하면, 색채와 형태는 음악처럼 인간의 영혼을 풍요롭게 하는 어떤 ‘진동’을 끌어내는 힘을 지닌다. 회화에서 추상적인 색채와 형태를 사용한 것은 관람자들에게 감동을 주고 나아가 영혼을 진동(울림)시키기 위해서였다. 신지학에 대한 칸딘스키의 입장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다라지기는 하지만 회화를 통해 감동(울림)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칸딘스키가 수용한 신지학의 이념은 제1차 대전 이후 완전한 기하추상으로 전향하는 데 큰 영향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