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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Jul 14. 2021

몽환적 상징주의 화가 빅토르 보리소프-무사토프

The pool, 1902. Tretyakov Gallery. Moscow 


미하일 브루벨(https://brunch.co.kr/@brunchfzpe/825)과 늘 비교되는 러시아 상징주의의 위대한 화가 빅토르 보리소프-무사토프(Victor Borisov-Musatov, 1870-1905)는 러시아 남부 내륙, 볼가강이 카스피해로 흘러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Saratov(사라토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철도 공무원이었던 탓에 어린 무사토프는 철길 사고를 당하였고 그 후유증으로 곱사등이로 일생을 보냈다.


그는 브루벨과 함께 러시아 후기 인상주의를 거쳐 상징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다. 그의 대표작 ‘연못(1902)’은 브루벨의 ‘악마’, 그리고 페트로프보트킨의 ‘붉은말의 목욕’과 더불어 러시아 상징주의 회화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보리소프-무사토프의 예술세계 역시 브루벨의 그림에서 보았던 우울함이 있다. 단지 브루벨의 우울이 비극적인 파토스였다면 보리소프-무사토프의 우울은 평온한 일상의 저변에 언제나 흐르고 있는 우울 쯤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하여 브루벨이 악마에 집착했던 반면 보리소프-무사토프는 여인들의 무표정과 얇은 슬픔, 그리고 그러한 감정의 정화로써의 시적 표현에 천착했다. 



프랑스에 그림 공부를 하면서 그는 파리에 있는 코르몽(Fernand Cormon, 1845-1924)의 화실에서 공부하였는데 역사화파였던 코르몽의 영향을 받아, 인물 표현에 있어 세부적인 감정이 박제된 표정이 그의 회화속 인물묘사에서도 발견된다. 그가 파리에서 매료된 또 한 명의 화가는 프랑스 상징주의의 아버지였던 샤반(Pierre Puvis de Chavannes, 1824-1898)이었는데 샤반의 영향 또한 그의 회화에서 그림을 그리는 시점(전지적 관찰자 시점) 표현의 주요한 특징으로 자리 잡게 된다. 


‘연못’에는 두 명의 여인이 연못을 배경으로 서 있거나 앉아있다. 서 있는 여인은 몸을 돌려 앉아있는 여인을 보지만 구체적인 시선을 알 수는 없다. 어쩌면 샤반의 인물 묘사나 코르몽의 박제된 인물의 느낌을 가진 인물 표현이지만 어쩐 일인지 약간의 슬픔이 묻어 나온다. 어쩌면 그리움 인지도 모르겠다. 흰 레이스와 머리 위로 반사되는 햇살이 눈부시지만 그림 속 연못의 풍경은 강렬하지 않고 오히려 아련하다.


무사토프는 그의 회화 공간을 매우 특이하게 창조해낸다. 이를테면 관람자의 시선을 분산시켜 먼 곳과 가까운 곳을 희석시켜 그림의 공간감을 왜곡시킨다. 이런 방법은 그림을 보는 관람자에게 이 그림 속으로 깊게 빠져들게 만든다. 동시에 그림 속 공간을 일상의 공간이 아닌 흐릿한 환상이 존재하는 특별한 장소로 만들어버린다. 이것은 그가 매료되었던 샤반의 ‘가난한 어부’에서 관람자가 느끼는 시점을 무사토프의 그림에서도 느끼게 된다. 


무사토프는 일생을 고통 속에 살다가 35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다. 그의 영향은 러시아 아방가르드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무사토프는 자신이 태어난 사라토프를 너무나 사랑하여 볼가강 유역의 푸른 초원과 사라토프의 자연에서만 느낄 수 있는 옅은 노란색과 황금빛을 즐겨 사용하였다. 브루벨의 푸른색과 보라색에 대비하여 옅은 푸른색과 노란색은 무사토프의 색이다. 이런 영향은 이후 쿠즈네초프(Pavel Kuznetsov, 1878-1968)로 대표되는 푸른 장미파에게 큰 영향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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