處有用與無用之間 (처유용여무용지간) 쓸모 있음과 쓸모 없음의 사이에 머무름.
曲松帶垂上線目 (곡송대수상선목) 굽어진 소나무 시선 위에 드리우고,
穢草藩長心中本 (예초번장심중본) 잡초는 마음 바닥에 무성하구나.
旣發虛舟遺欲達*(기발허주유욕달) 빈 배는 이미 떠나고 욕망만 남아,
熟視不言日晩沼 (숙시불언일만소) 우두커니 해 지는 늪을 바라보네.
2021년 5월 29일 오후 8시. 지난 금요일 오후에 존경하는 경남교육정책연구소 차재원 소장님께서 사진 몇 장을 詩題로 보내셨다. 하루 종일 몸을 쓰는 일을 하고 밤이 되어 피곤하고 아둔한 머리로 이리저리 생각을 하다가 28자를 뭉쳐놓았다. 늘 부끄럽지만 사실은 나의 능력이 딱 이 만큼이니 욕심을 낼 일도 아니다.
보내주신 사진 중에 이 사진을 고른 이유는 소장님께서 이것이 마음에 드는 듯 말씀하셔서 골랐는데 늪지를 조금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장면이다. 오로지 나의 경험과 생각으로 글을 지었지만 사진을 고른 소장님이 생각하는 바와 다를지도 모르겠다. 내 손을 떠나기 전에 몇 자를 고칠까 하다가 그대로 둔다.
인간 ‘장자’는 그의 책 『장자』에서 지속적으로 무용의 도리를 강조한다. 그저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인데 의미 없이 그저 살아 있다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할까 싶지만 ‘장자’는 살아 있어야 뭔가를 이루고, 살아 있어야 뜻을 펼 수 있으며 마침내 도를 이룰 수 있다고 강조한다. 어리석은 나로서는 이 말이 그렇게 설득력이 없어 보이지만 나 따위의 생각이 무슨 소용이랴!
*『장자』’산목’ 제2장에서는 市南宜僚(시남의료: 저잣거리 사람이라는 뜻으로 늘 『장자』속에서는 대수롭지 않은 존재들이 도를 이룬 사람으로 등장한다. 전형적인 우언의 방법이다.)와 魯侯(노후: 노나라의 왕)와의 문답을 통해 이상적 삶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여기서 ‘장자’는 자신을 비우면 남을 해치지도 않고, 남에게 해침을 당하지도 않는 이상적인 삶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본문 중에 등장하는 빈 배(虛舟 허주)의 비유는 바로 자신을 비우는 무욕의 태도를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