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장면, 지금 우리.
오늘 아침 출근길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바깥공기는 참으로 답답하다. 그놈의 미세먼지가 이런 사단을 만들었다는데 미세먼지는 또 누가 만들었는가를 생각해보니 더 답답해진다. 어쨌거나 아침 그 희뿌연 날 나는 “The Beginning”을 들으며 학교로 출근했다.
2008년 적벽대전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오우삼 감독은 중국인으로서 할리우드에 진출하여 크게 성공했다. 그의 할리우드 대표작은 “브로큰 애로우”와 존 트라볼타와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페이스 오프”정도인데 할리우드가 새로운 것에 잠시 시선을 준 정도 수준에 그의 영화가 서 있다. 그가 다시 중국으로 돌아와 일본의 자본과 손잡고 만든 영화가 바로 적벽대전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제갈량 역의 ‘금성무’와 주유 역의 ‘양조위’ 지만 주유의 아내 소교 역으로 나오는 ‘린즈링’의 역할이 영화적 재미를 준다. 이 영화의 첫 음악이 바로 “The Beginning”이다.
늘 삶에는 슬로 모션 같은 부분이 있다. 그것도 매우 중요하고 급박한 순간의 기억은 늘 슬로 모션으로 남아있다. 이 영화, 적벽대전에서도 중요한 부분은 슬로 모션으로 처리했다. 오우삼 감독의 특기이자 중국 무협영화의 필수적인 장치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슬로 모션은 영화에서처럼 누구에게나 삶의 중요한 장면이 모두 그렇게 인식되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사실 삼국지만큼 보수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책이 어디 있으랴! 그 책을 어린 시절 몇 번이고 읽고 어른이 되어서도 서너 번 읽은 내가 보수적이 못된 이유는 참 의아스럽기까지 하다. 누구를 위해 충성하다 죽고, 나라를 위해 아낌없이 목숨을 버리고, 의리를 위해 모든 것을 참아내는 참 별스런 옛이야기에 나는, 또 우리는 왜 그토록 열광했는지 모르겠다. 논리적인 것과 감정적인 것이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 인간이다. 삼국지를 제법 많이 읽고 또 읽었음에도 여전히 보수가 되지 못한 지금의 나의 모습이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간웅의 표상 조조, 황제가 꿈이었던 그는 안타깝게도 살아서 황제가 되지 못하고 죽고 난 뒤 아들 조비에 의해 황제에 추존된다. 그는 삼국지연의(나관중 작)에서 악역이자 비열 한으로 이 소설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하지만 정사인 삼국지(진수 편)에서 그는 매우 합리적인 인물로서 그려진다. 하기야 진수가 위나라를 계승한 진나라 사람이니 당연지사다.
반면 손권은 강동의 호랑이라는 별명이 있으나 전체적으로 담백한 인물이다. 오나라의 대황제로서 형(손책)에게 나라를 물려받아 나라 경영을 비교적 잘하였으나 말년에 태자 책봉 문제 때문에 나라가 위태로워졌다. 오나라에는 최고의 장수 주유가 있었다. 주유는 삼국지연의 전체를 놓고 보아도 뛰어난 인물 10 걸 안에 꼽을 만큼 문 ․무가 출중했으나 안타깝게도 전무후무 제갈량과 동시대에 태어난 이유 때문에 빛을 잃는다.
유비의 나라 촉은 사실은 제갈량의 나라였다. 비록 제갈량이 유비의 덕에 감화되어 견마지로를 다하지만 그가 없었다면 촉은 존재할 수도 없었고 동시에 유지될 수도 없었다. 그만큼 그는 촉나라에 절대적 존재였고 그 영향은 위나라의 조조에게 오나라의 손권, 주유에게 언제나 위협적인 존재였다.
이 세 나라가 동시에 전면전을 치르는 장면은 삼국지연의에 딱 한 장면 등장하는데 그것이 바로 적벽대전이다. 물론 2:1의 전쟁이었지만 1이었던 위의 군사가 워낙 압도적이어서 군사적 규모로서는 역으로 1:5 정도의 전투였다. 하지만 이 전쟁에서 제갈량의 신묘한 계략으로 촉, 오 연합국이 승리하는데 이것은 그 뒤 3국의 鼎立에 큰 영향을 준다. 하지만 이 모두가 거의 허구에 가깝다는 것이 현재의 정설이다. 아마도 삼국지연의의 작가 나관중이 흥미를 돋우기 위해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첨가하여 만든 무협소설 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음악은 일본 사람 이와시로 타로가 맡았는데 중국의 악기를 적절하게 사용하여 제법 새로운 음악을 들려준다. 아침 햇살과 제법 잘 어울리는 음악이다. 제목조차 “The Beginning”이다. 우리 역사의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고 있다. 현직 대통령을 탄핵으로 끌어내린 뒤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를 누르고 있는 친일과 친미, 그리고 천박한 자본을 혁파해야 한다.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로 등장하는 칼의 복원 시퀀스가 재미있다. 녹슨 칼이 역으로 녹을 털고 처음 칼을 만들었을 순간으로 되돌아가는 모습이다. 그 장면을 생각하면서 지금, 오욕의 역사를 청산하고 다시 날카로워지는 이 땅의 민중, 이 땅의 역사가 되기를 간절히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