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판

by 김준식
프랑스 혁명기의 화가 Louis Léopold Boilly가 그린 비운의 혁명가 로베스 피에르


정치하는 사람들이 있는 장을 말할 때 우리는 ‘정치판’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 ‘판’의 속뜻에는 싸움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왜 싸우는가? 당연히 권력 때문이다. 권력의 속성은 절대 양분될 수 없고 동시에 양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정치판은 살풍경하고 피아의 구분이 없다. 따라서 언제나 속이고 배신하며 또 연대하기도 하는 쓸쓸한 음모가 그 속에 있다.


그런가 하면 정치의 대상인 보통 사람들은 정치가들보다는 덜 배신하고 덜 이율배반적인 삶을 산다. 왜냐 하면 보통의 우리에겐 싸워서 가져야 할 권력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에게는 쓸쓸한 음모 따위도 없다. 음모가 없는 우리가 정치판의 음모를 보고 느끼는 감정은 무서움 혹은 서글픔이다. 그 서글픔은 그들과 비교되는 우리의 처지에 대한 자조적인 슬픔을 포함하여 인간에 대한 연민의 서글픔까지 포함된 약간은 복잡한 것이고, 무서움 또한 어두워서 불쾌한 느낌, 즉 불확실성과 불투명함에서 오는 무서움이다.


권력의 내부적 속성은 이익의 독점에 있다. 즉 권력을 가진 자들만이 가질 수 이익의 수호를 위해 그들은 권력에 복종하고 동시에 권력을 유지하려 든다. 사실 우리 보통 사람들은 이 권력의 이익을 누려 본 적이 없다. 따라서 그 맛도 느낌도 전혀 알 길이 없다. 어쩌면 앞으로도 영원히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저 많은 국회의원, 정치인, 관료들이 멍청하고 무식해서 자신이 하는 일이 어쩌면 친일인지 친미인지 모르고 또, 진보와 보수를 구분 못하겠는가? 아니다. 그들도 안다. 그들이 청소년 시절 얼마나 똑똑한 사람들이었는가? 공부는 정말 잘했고 품행도 방정했으며 모든 이의 모범이 된 그들이 아닌가? (상장에 그렇게 적혀 있다.) 따라서 추정컨데 그들도 그들끼리 모이는 어두운 곳에서는 미국과 일본에게 분노하며 또 현재의 정치적 상황을 비판하고 지도자를 까며 현실상황을 개탄할지도 모른다. 물론 더 못 해 먹고 더 챙기지 못하는 아쉬움도 토로할 것이다.


단지 그들이 당당하게 반대, 혹은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가끔은 목에 힘주어 적극적 홍보를 하는 것도) 것은 그들과 그들의 가족이 누리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도 완벽하게 보장될, 권력이 확실히 담보하는 그 이익의 상실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에서 그런 예를 수 없이 봐왔고 권력의 밖에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가를 그들은 그 좋은 머리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권력에 의해 내쳐진 자들의 슬픔과 분노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을 초월한다. 그래서 다시 권력을 잡는 순간 그 모든 것을 되갚으려 한다. 그 탓에 애꿎은 보통의 우리만 죽어나간다.


따지고 보면 현재의 상황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보고 욕하고 분노하고 또는 안타까워하는 우리가 그들보다는 조금 더 행복하지 않은가? 비록 우리에게는 그 어떤 담보된 이익도 없고 또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자신의 양심을 완벽히 속이고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스스로가 쓴 가면조차도 속이는 저들, 정치판의 존재들보다는 최소한 인간적 행복을 누리지 않는가?


여당도 야당도 새 당대표를 선출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릴 것이고 나라를 어찌어찌 경영하겠다는 청사진을 펼쳐 보일 것이다. 청사진 속에는 모르긴 해도 산업재해를 반드시 막겠다는 이야기, 노인과 약자들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이야기, 교육에 인력과 예산을 전폭적으로 투여하겠다는 이야기, 문화 부흥을 위해 국가적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이야기는 분명 없을 것이다. 표가 되어 돌아오지 못하는 청사진은 청사진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저들은 벌써 저들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저들의 이익을 위해 새 판을 짜고 세력을 규합하고 은밀하게 내통한다. 다만 국민들을 들러리로 전락시킨 뒤 저들의 잇속을 챙기기 위해 그 모든 수작을 부릴 것이 분명하다. 어쩌면 그것이 권력의 속성인지도 모르겠지만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는 이즈음의 정치판의 풍경도 이전 시기와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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