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렴의 의미 확장에 대한 반론

by 김준식


어제 청렴 연수를 했다. 대충 요약하자면 이전의 청렴 개념을 좀 더 확장하여 ‘존중’이나 ‘배려’의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청렴’을 실천하자는 것이었는데……



‘淸廉’의 ‘廉’은 한자적 의미가 ‘不貪’이다. 즉 탐내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淸’은 ‘去濁遠穢澄(거탁원예징)’ ‘탁함에서 떨어지고 더러움에서 멀어져 맑아짐’으로 풀이된다. 여기 어디에도 ‘존중’이니 ‘배려’니 하는 의미는 없다.



이를테면 청렴은 객관적 징표로 확인되는 사실에 근거한 말이다. 더럽고 탁한 것은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의 문제다. 따라서 그 탁하고 더러운 것으로부터 맑고 깨끗해지는 상황(이것 역시 감각으로 확인 될 수 있는)으로 진행되는 개념이 ‘淸’이다. ‘廉’ 또한 타인에게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그것이 무엇이든 형태를 띤 것이어야 한다.)에 대한 욕심을 말한다. 종합하자면 ‘청렴’은 위 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우리의 감각기관에 의해 쉽게 파악될 수 있는 것에 대한 욕망으로부터 떨어져 맑아지는 것이다.



그런데 ‘존중’이나 ‘배려’는 대단히 주관적이고 동시에 우리의 감각기관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없는 추상적이며 ‘가치’의 문제이다. 도대체 대단히 객관적인 ‘청렴’이라는 범위에 이런 주관적 가치 문제까지 억지로 끼워 넣는 저의는 무엇인가?



나는 공무원이다. 30년 이상을 공무원으로 살아오면서 부정한 청탁을 해 본적도 없고 대상이 된 적은 더더욱 없다. 아마 대부분의 대한민국 공무원이 이렇게 공직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에게 ‘청렴’이라는 말을 앞세워 공무원 집단 전체를 잠재적으로 ‘淸廉’하지 못한 집단으로 만들었다. 하기야 공직자들이 청렴의 의무를 무시하는 사례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될 때마다 우리, 그리고 나의 모습을 되돌아 본다. 그래서 부정 청탁이나 기타 객관적 징표로 드러난 청렴하지 못한 부분에 대하여 반성하고 조심한다. 하지만 그것은 매우 객관적인 상황에 대한 이야기다.



청렴이라는 이야기가 우리 사회에 처음 대두된 것은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집권하면서부터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이명박은 현재 ‘청렴’을 정면으로 위반한 대가로 교도소에 있다.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이런 아이러니에서 우리는 ‘청렴’이라는 것이 왜 공무원 사회에 등장했는지에 대한 문화와 풍토를 이해할 수 있다.



좋다!! 누가 어떤 의도로 어떻게 시작했던 공무원은 청렴해야 한다. 하지만 ‘존중’ ‘배려’는 청렴과 결이 다르다. 차라리 ‘존중’과 ‘배려’를 위한 다른 정책을 만들어라!!!(이렇게 이야기하면 또 새로운 기관이 탄생할지도 모른다.) 청렴 연수에서 ‘존중’ 이나 ‘배려’ 이야기를 억지로 듣고 싶지는 않다. 그것은 사회적 분위기에서 출발하는 것이지 단기간의 연수를 통해 배양되는 것이 아니다. 누차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추구해야 할 거대한 가치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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