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그라인더로 커피를 갈면서……

by 김준식

주말 아침은 커피콩을 손으로 갈아 만들어도 될 만큼 시간적 여유가 좀 있다.


커피콩을 손 그라인더로 갈다 보면 때때로 회의에 빠진다. 힘이 드는 것도 큰 이유이기는 하지만 그 끝없는 무한 반복의 원운동이 참 무의미해지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원운동을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그 몇 분 동안은 이렇다 할 회피 방법도 없다.


그러다가 생각해 본다. 내가 살고 있는 것이 결국 원운동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친다. 출생에서 죽음까지 빙 둘러 그 자리이니 크게 그려지는 원운동이다. 커피 그라인더 원운동은 커피 가루를 만들어 내지만 우리 삶의 원운동은 이렇다 할 결과물 조차 없다. 아무 일도 아닌 일은 그저 열심히 돌다가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오는 일이 우리 삶인 모양이다.


원운동은 항상 중심축이 있다. 중심축은 거의 고정되는 경향이 있다. 작은 커피 그라인더를 손으로 꽉 쥐고 움직이지 못하게 해야 커피를 갈기가 수월하다. 즉 중심이 고정되어야 커피 갈아 내기가 힘이 조금 덜 든다. 우리 삶도 큰 범위에서 본다면 이와 같은 이치일 것인데, 그 삶을 살아내는 스스로는 어디가 중심인지 어느 부분이 움직이지 않아야 하는지 쉽게 알 수 없다. 그래서 이렇게 살아내기가 힘이 드는가?


커피 그라인더의 손 잡이를 길게, 혹은 짧게 하는 것은 그라인더 전체와 잘 조화될 수 있는 비율로 가장 최적의 조합으로 제품이 생산된다. 더 길거나 더 짧아지면 힘이 더 들어간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또는 경험적으로 알아냈기 때문이다.


내 삶이 커피 그라인더보다는 매우 거대하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하지만 내 삶의 중심은 여전히 알 수 없고, 중심을 모르기 때문에 내가 중심으로부터 얼마나 떨어져서 궤적을 그리고 있는지도 잘 모른다. 물론 타원궤도인지 원궤도 인지도 알 수 없다. 한 가지는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살아있기 때문에 궤도 운동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뿐이다.


물리학에서 등속 원운동은 이렇게 정의된다. 등속 원운동의 주기는 T, 원의 반지름은 r, 물체의 속력 v에 대해, v=2πr/T 의 관계에 있다. 우리 삶의 주기가 T, 알 수 없는 중심축으로부터 나와의 거리가 r이라면, 내 삶의 속력은 주기가 크면 클수록 느려지고, 중심축으로부터 나와의 거리가 작으면 작을수록 역시 느려진다. 하지만 두 개의 조건이 동시에 만족할 수는 없다.(논리적 오류가 발생한다.)


커피가 다 갈리니 커피 향이 스며 나온다. 그라인더를 열어보니 콩이 잘 갈렸고 향기는 더 없이 그윽하다. 내 삶의 주기가 끝나는 순간, 다른 것은 몰라도 아주 미미한 향기라도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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