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장마, 그리고......

by 김준식

Ⅰ. 오온개공


비가 내리면서 조금 우울해졌다. 중년의 우울인지도 모를 이 찜찜한 우울이 하루 종일 마음을 지그시 누르고 있지만 딱히 호흡을 방해하거나 일상을 침범할 정도의 우울은 아니다. 우울함이란 나의 육신의 존재를 인식하는 의식의 작용이라고 본다면, 결국 이 우울은 나 스스로 만들어 낸 假像狀況이 분명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스스로 만들어 낸 감정의 무게에 눌려버리는 이 어리석음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렇게 논리적으로 접근하는 순간 어이없게도 나의 우울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춰버리고 만다. 하지만 한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이 우울의 바닥에는 나의 이기심과 나의 분별심, 그리고 연질의 각종 감각들이 뒤섞여 실체도 아닌 그렇다고 허상도 아닌 그 어떤 것을 만들어 놓고 사라지지도 나타나지도 않으면서 나를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Ⅱ. 무무명


거미줄이 곳곳에 쳐지는 계절이다. 거미는 거미집에 붙는 작은 벌레의 체액을 빨아먹고 산다. 거미줄을 통해 먹이를 공급받으니 엄밀히 말하면 거미집이라는 표현은 잘못된 표현이다. 즉 주거의 공간은 아니다. 인간의 눈으로 볼 때 그러하다는 이야기다. 하기야 거미 입장에서 이런저런 생각이 있을 리 없다.


내가 집중하는 곳에 늘 세상과 그 내부의 갈등이 있다. 내가 관심 두지 않는 곳은 언제나 평화요 자유며, 완전함이다. 뒤집어보면 내 마음이 세상 모든 분란과 갈등의 원인이요 시작이다. 하여 마음잡아 두고 함부로 뻗치지 않게 해야 하는데 날이 더워지면 갈수록 그것이 힘들어진다.


Ⅲ. 부증불감


태양의 복사열로 올라가는 온도는 지극히 객관적이지만 그 온도를 느끼는 더위는 순전히 주관적이다. 나의 더위는 온전히 나의 것이므로 온도와 늘 일치하지는 않는다. 이런저런 자질 구레한 일들이 내 주위를 맴돌며 나를 덥게 하지만 그 더위는 매우 주관적이다. 하여 에어컨으로 해결될 일은 아니다. 오늘은 소서다. 늦은 장마가 끝나면 제대로 된 햇빛이 내리쬐는 날들이 한 동안 계속될 것이다.


그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마음은 항상 내 것이어야 하는데 아주 사소한, 아주 미미한 바람과 자극에도 너무 쉽게 내 마음을 내어 놓고 마는 이 어리석음이 그저 안타깝지만 아직 공부가 부족한 탓으로 마음에 이런저런 상처가 난 후에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


Ⅳ. 일체고액


이 학교로 부임해 온 2019년 그 해 가을, 유난히 태풍과 비가 많이 왔다. 학교 운동장 주변에 하수구 정비를 하지 않아 운동장에 물이 넘쳐 논처럼 되기도 했다. 2020년 임시로 하수구를 정비했지만 비가 더 많이 오는 바람에 다시 운동장은 논처럼 한 동안 물이 가득했다. 올해는 마음먹고 장비와 인력을 동원하여 이틀에 걸쳐 하수구와 주변을 정리했더니 어제 내린 장맛비에도 운동장은 별일이 없다.


생각해본다, 흐름에 대하여. 막히면 뚫어야 하고 쌓이면 비워야 흐름은 유지된다. 흐름을 막으면 넘치게 되고 넘치면 방향을 잃는다. 결국 아래로 내려갈 것이지만 방향을 잃은 흐름은 한 동안 가지 말아야 할 곳으로 흐르기도 하고, 가끔은 아예 다른 방향으로 길을 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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