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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Oct 12. 2021

혼란한 세상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동, 서양을 막론하고 대체로 어지러운 시절에 등장하여 사람들을 현혹하는 존재들이 있다. 선지자 인체 하지만 사실은 사람들의 혼란스러움과 두려움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얻으려는 자들이 대부분이다. 대대로 우리나라처럼 이런 무리들이 많은 나라도 드물다. 그만큼 우리나라 상황이 편하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내년에 대통령 선거가 있다 하니 이런 부류들이 더욱 기세를 떨친다. 심지어 종교라는 이름을 가진 집단조차도 이런 흐름에 편승하는 모습이다. 사실 어제오늘 일도 아니다. 


2300년 전 중국은 전국시대였다. 언제 어떤 식으로 죽임을 당할지 모르는 시대를 사는 평범한 사람들은 언제나 혼란과 두려움에 있었다. 당연히 그것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얻으려는 자들이 그 시대라고 없었겠는가! 장자는 이런 상황에서 우리게에 이런 이야기를 해 준다. 이야기는 이렇다.『장자』, 응제왕


중국 鄭나라(춘추 시대 주나라의 제후국)에는 미래의 일을 귀신처럼 잘 맞추는 季咸(계함)이라는 무당이 있었다. 그 무당은 사람들의 삶과 죽음, 禍(화)와 福(복), 長壽(장수)와 夭折(요절)등의 운세를 정확하게 날짜까지 맞춰서 마치 귀신같았다. 


그래서 정나라 사람들은 그를 보면 자신의 불행이 드러날까 두려워 심지어 가지고 있던 물건조차 버리고 도망가기에 바빴다.


이에 列子(장자에 등장하는 열어구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가 계함을 만나보고 계함에게 완전히 매료되어 돌아와서 壺子(호자, 열자의 스승)에게 말했다.


“처음에 저는 선생님의 道를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또 선생님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있습니다.”


어이없는 표정으로 壺子가 말했다.


“나는 너를 위해 껍데기는 다 전수해 주었지만, 그 알맹이는 아직 다 전해주지 않았는데, 너는 참으로 도를 터득했다고 생각하는가? 암탉이 아무리 많아도 수탉이 없으면 또 어떻게 알을 부화할 수 있겠는가? 너는 도의 껍데기를 가지고 세상과 겨루어서 세상 사람들의 믿음을 얻으려 했다. 그 때문에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너의 관상을 쉽게 알아맞히게 한 것이다. 어디 시험 삼아 그를 데려와서 나를 그에게 보여 보거라.”


그러자 다음 날, 열자가 계함과 함께 호자를 만났다.


계함이 호자의 관상을 보고 난 뒤 밖으로 나와 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 그대의 선생은 죽을 것이다.

살아날 가망이 없으니 열흘을 넘기지 못할 것이다.

나는 그대의 선생에게서 괴이한 조짐을 보았는데, 젖은 재의 모습을 보았다.”


열자가 들어와 옷섶을 적시며 울면서 그 말을 호자에게 전하자 호자가 이렇게 말했다.


“아까 나는 그에게 대지의 무늬(땅의 이치, 즉 크게 동요하지 않아 마치 죽은 듯 잠잠한 기운)를 보여 주었다. 멍하니 움직이지도 않고 멈추지도 않았으니 그는 아마도 나의 生機가 막혀 버린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시험 삼아 다른 날 또 데리고 와 보거라.”


또 그다음 날에 열자는 계함과 함께 호자를 뵈었다.


계함이 호자의 관상을 보고 난 뒤 밖으로 나와 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다행이다. 그대의 선생은 나를 만난 덕에 병이 다 나았다. 완전히 생기가 회복되었다. 어제는 내가 그대의 선생에게서 생기가 막혀 버린 모습을 보았다. 그 때문에 죽을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열자가 들어와 그 말을 호자에게 전하자 호자가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까 나는 그에게 하늘의 모습(하늘의 운행, 즉 살아 움직이는 우주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는 아마도 나의 生機를 보았을 것이다. 시험 삼아 또 데리고 와 보거라.”


그리하여 또 다음 날에 열자는 계함과 함께 호자를 뵈었다.


계함이 호자의 관상을 보고 난 뒤 밖으로 나와 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 선생의 관상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관상을 볼 수가 없다. 어디 한번 일정하게 잡아주면 그때 다시 관상을 보겠다.”


열자가 들어와 그 말을 호자에게 전하자 호자가 이렇게 말했다.


“아까 나는 그에게 더없이 허무하고 흔적이라곤 전혀 없는 모습(완전히 텅 비어 있어서 그 어떤 기운도 감지해낼 수 없는 상황)을 보여 주었다. 그는 아마도 나의 음양의 氣가 평형을 이룬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큰 물고기가 이리저리 헤엄치는 깊은 물도 연못이며, 고요히 멈추어 있는 깊은 물도 연못이며, 흘러가는 깊은 물도 연못이니, 연못에는 아홉 가지의 유형이 있는데, 이번에 계함에게 보여 준 것은 세 가지에 해당한다. 시험 삼아 또 데리고 와 보거라.”


다음 날에 또 계함과 함께 호자를 뵈었다.


선 채로 아직 앉지도 않았는데 계함이 얼이 빠져 달아났다.


호자가 말했다.


“쫓아가 잡아라.”


열자가 그를 따라갔지만 미치지 못하고 돌아와 호자에게 말했다.


“벌써 사라졌습니다. 이미 놓쳤습니다. 제가 미치지 못했습니다.”


호자가 말했다.


“아까 나는 아직 나의 근본에서 떠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내가 마음을 비우고 욕심이 전혀 없는 모습으로 그를 대했더니 그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게 되었고, 따라서 무엇이 무너져 내린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따라서 무엇인가 거센 물결이 덮쳐 온다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에 도망친 것이다.”


그런 일이 있은 뒤에 列子는 스스로 아직 배우지 못했다고 생각하여 집으로 돌아가 삼 년 동안 집 밖에 나오지 않고, 자기 아내를 위해 밥을 지었으며, 돼지를 먹이되 사람에게 먹이듯 하였으며, 매사에 더불어 親疏(친소, 친하거나 소원함)를 따짐이 없었고, 인위를 깎아 버리고 쪼아 없애서 소박한 데로 돌아가, 아무런 감정 없이 외로이 홀로 서서 어지러이 만물과 뒤섞였는데, 한결같이 이런 태도를 지키면서 일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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