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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May 15. 2021

‘공자’를 대놓고 까는 ‘장자’


주말이면 산으로 가거나 땅을 파는데 오늘은 비가 아침부터 내린다. 하릴없이 『장자』를 다시 읽는다. 31편 漁父를 보다가 몇 자 적어 본다.


‘장자’는 줄곧 공자와 그 무리들을 시류에 편승하고 출세와 명분을 위해 움직이는 아주 형편없는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 ‘어부’에서는 특히 공자를 아주 집중 공격한다. 


‘어부’의 핵심 화자인 ‘어부’는 공자를 이렇게 몰아간다. 


"그대는 仁義道德의 세계를 자세히 따지고, 같음과 다름의 경계를 분명하게 살피고, 出處進退에 따르는 정세의 변화를 관찰하고, 물건을 주고받는 節度를 합당하게 하고, 좋음과 싫음의 감정을 잘 다스리고, 즐김과 성냄의 절도를 조화하려 하니 그래 가지고서야 危害를 면치 못하는 데 가까울 것이다.” 


이 말을 듣자 ‘공자’가 애써 집으로 찾아가 도를 배우고자 하니 ‘어부’는 아주 매몰차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는 듣건대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사람과 함께 하면 오묘한 道에 이를 수 있고, 함께 나아갈 수 없는 사람과는 妙道를 알 수 없으니 삼가 함께 하지 말아야만 내 몸에 허물이 없게 된다.”라고 말하며 홀연히 노를 저어 떠나 버리고 만다. 참 ‘공자’ 꼴이 말이 아니다. 


이때 ‘공자’의 제자인 ‘자로’가 스승의 모습을 보며 화가나서 이렇게 말한다. 


“제가 오랫동안 선생님의 심부름꾼으로 지냈는데 아직 한 번도 선생님이 이처럼 두려워하고 삼가면서 남을 응대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萬乘의 천자와 千乘의 제후들이 선생님을 만나 보고 뜰을 나누어 동서로 마주 보는 대등한 禮를 갖추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도 선생님은 오히려 상대를 내려보는 거만한 모습을 지니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부’가 노를 짚고 마주 섰을 뿐인데도 선생님께서는 허리를 구부리고 몸을 기역자로 꺾으시고 상대가 말할 적마다 반드시 절을 하고 응대하시니, 너무 심하지 않습니까?”


그러자 ‘공자’는 ‘자로’를 나무라는 시늉을 하며 자기모순의 논리를 편다.


“심하구나! 由(자로의 이름은 仲由)를 가르치기 어려움이여!(자로는 늘 무식하다는 평을 듣는다.)

禮義에 몰두한 지 이미 상당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거칠고 비루한 마음을 지금껏 버리지 못하고 있구나.

가까이 오라. 내가 너에게 말해주겠다.


어른을 만나 공경하지 않는 것은 禮를 잃은 것이고, 현자를 보고 존경하지 않는 것은 어질지 아니한 것이니 그분이 道에 도달한 至人이 아니라면 남의 머리를 숙이게 할 수 없을 것이며, 남에게 머리를 숙이면서 순수하지 않으면 진실을 얻지 못할 것이다. 


不仁은 사람에게 그보다 더 큰 화가 없는 것인데도 由는 不仁한 행동을 멋대로 하고 있구나.


또한 道라고 하는 것은 만물이 말미암는 근원이니, 모든 사물이 이 道를 잃으면 죽고 이 도를 얻으면 살며, 일을 하는 경우에도 이 도에 어긋나면 실패하고 이 道를 따르면 성공한다.


그러므로 道가 있는 곳을 聖人은 존중한다. 그런데 지금 그 ‘어부’에게는 도가 있으니 내가 감히 공경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나름 논리를 펴지만 전체적으로 이것은 ‘장자’가 重言을 이용하여 ‘공자’를 공격하는 이야기가 분명하다.


이 이야기는 다르게 보면 寓言의 방법도 쓰였다. 처음 이야기가 시작되는 부분은『論語』에 나온 장면을 의식하고 쓰여진 것이 분명하다. 즉 ‘공자’가 杏壇(행단)에서 弦歌鼓琴(현가고금) 하는 모습은 『論語』 ‘先進’ 편에서 제자 曾點(증점)이 거문고를 연주하는 대목과 흡사하다. 이 대목은 증점(증석)의 포부로 더 유명하다.(증점이 공자의 물음에 이렇게 답한다. "늦은 봄에 봄 옷을 만들어 입고 관을 쓴 벗 대여섯과 아이들 육칠 명과 같이 沂水(기수)에서 목욕을 하고 舞雩(무우)에서 바람을 쐬고 노래나 읊으면서 돌아오겠다")


‘어부’와 제자들의 문답은 역시 『論語』 ‘微子(미자) 편에서 나루터를 물어보는 공자 일행과 은자인 長沮(장저), 桀溺(걸닉)의 문답과 흡사하다. 또 글에서 공자 스스로 자신을 69세라고 소개하는데 이 또한 ‘爲政(위정)’편에서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칠십이종심소욕부유구)’라고 한 내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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