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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Feb 14. 2021

다시 '장자' 읽기

연휴 내내 복잡한 생각을 했더니 토요일 오후부터 머리가 지끈거린다. 오늘은 그저 맥을 놓고 쉴까 하다가 오전에 시를 한 편 쓰고 오후 내내 ‘莊子’를 읽었다. 벌써 6년 전 무턱대고 시작한 ‘莊子’ 강의를 생각하니 당시 수강하신 분들께 살짝 미안한 생각이 든다. 당시는 열심히 강의를 했지만 지금 돌이켜 보니 필요 없는 이야기가 더 많았고 필요한 이야기는 적었다. 



하지만 이미 시간은 흘렀다. 만약에 다시 그분들과 함께 ‘莊子’ 강의를 할 수 있는 날이 돌아온다면 이번에는 좀 더 새롭고 의미 있는 내용으로 강의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오늘 읽은 ‘莊子’를 생각하면서 쓴 글이다. 



다소 허황되고 황당한 붕새 이야기에서 시작한 장자 내편은 응제왕 편에서 혼돈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북녘 바다의 물고기 곤은 거대한 새 붕이 되어(化而爲鳥) 대풍大風을 타고 남쪽 바다로 날아간다. 北은 어두움(暗), 추움, 南은 밝음(明), 따뜻함의 상징이라 생각하고 어렵사리 대붕의 날개에 매달려 북에서 남으로 날아갈 생각만 있는 우리에게, 장자는 문득 우리의 이런 방향성을 비웃듯 딴 청을 피우더니 문득 이야기의 끝을 흐리고 만다. 우리의 어쭙잖은 분석적, 추상적, 논리적, 법칙적인 사고에서 나올 법한 기대 가능성은 이렇게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또한 힘겨운 사유의 여정 끝에 장자가 보여주는 것은 혼돈(渾沌, 混沌)이 아니라 혼돈의 죽음이다. 남해 임금 숙儵과 북해 임금 홀忽이 중앙의 임금인 혼돈渾沌의 땅에서 만났는데 혼돈이 매우 융숭하게 대접하였다. 


숙, 홀은 보답으로 혼돈에게 보고 듣고 먹고 숨 쉴 수 있는 구멍을 뚫어 주었는데 혼돈은 그만 죽고 말았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누군가의 말처럼 장자 본인의 이야기 또한 하나의 小知에 불과하다는 것을 표현하고자 함이었을까? 힘겨운 有爲가 결국 돌아갈 곳은 虛의 無爲인가! 


이렇듯 글은 하나, 하나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전체의 구조를 통해 무언가를 우리에게 전달하려고 한다. 


또 소요유에서는 미묘하게 달라진 똑같은 이야기의 반복이 보이는데 이는 일순 우리를 당황하게 만든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붕새의 우화는 거의 똑같은 이야기로 두 번 나타난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남쪽의 바다가 천지天池이고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북쪽의 바다가 天池이다. 거기엔 곤이라는 물고기가 있고(有魚焉) 또 새도 있다(有鳥焉). 같은 이야기 사이에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우리 인식의 한계를 언급하고 있다. 도대체 어떤 책에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는가? 이것이 편집자의 실수가 아니라면 같은 이야기의 반복 구조로서 이 글의 작자인 ‘장자’가 우리에게 말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제물론에서도 제자가 스승에게 자기를 잃어버리는(吾喪我) 법에 대해 묻자 스승은 거기에 대해 답하는 것이 아니라 인뢰(인간의 피리 소리), 지뢰(땅의 피리 소리), 천뢰(하늘의 피리 소리) 등 엉뚱하고 전혀 다른 이야기를 꺼낸다. 


또 천뢰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그저 소리를 내는 것이 무엇인가? 하며 또 다른 질문으로 이야기 끝을 맺으니 이런 비논리적 황당함에 우리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 이는 언어로 이야기될 수 없는 다른 경지로 눈을 돌리라는 ‘장자’의 조언이 아닐까? 상식적 사고의 틀을 부수기 위해서는 언어의 논리성을 뛰어넘는 비논리적 구성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을까?


‘莊子’ 는 어느 순간에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우리는 이 글의 구조를 쉽게 알아차리기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글을 읽으며 희미하게 그 구조를 발견하면서 보물 찾기와 비슷한 희열을 느끼기도한다. 체계화된 공부에 훈련되어 있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공부 방법이라 ‘장자’가 우리에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을 눈치채기란 쉽지 않지만, 언어 이면에 숨어있는 구조의 배열을 읽어 내는 순간, 언어를 넘어 전체가 하나의 통으로 연결되는 편집자의 의도를 한 발짝 더 가까이서 만나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뭐 이런 이야기를 해 주고 싶다. 빨리 코로나가 끝나고 어디서든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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