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와 교수

by 김준식


고등교육법 제15조(교직원의 임무) ②교원은 학생을 교육ㆍ지도하고 학문을 연구하되, 필요한 경우 학칙 또는 정관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교육ㆍ지도, 학문연구 또는 「산업교육진흥 및 산학연협력촉진에 관한 법률」 제2조 제6호에 따른 산학연협력만을 전담할 수 있다. <개정 2016. 12. 20.>


(우리나라 대학 교수에 대한 기본 규정이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고등교육은 대학을 이야기한다. 고등학교와 중학교는 중등교육으로 부른다.)


대선을 앞두고 여당이든 야당이든 각 선거 캠프에 자천 타천으로 모여드는 인재들의 직업 중 가장 많은 직업이 대학 교수다. 어제오늘 일도 아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교수들이 정치 활동을 한다. 대학에서 연구한 이론들 중에서 현실 정치에 적용할 사례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특히 경제 정책 등에서 대학 교수들이 가지는 이론들은 특정 정부의 경제 정책으로 자주 인용되어 우리 삶에 많은 영향을 준다. (미국을 예로 들자면 루스벨트와 케인즈 등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교수의 임무는 위 고등교육법 제15조처럼 교육ㆍ지도가 주 임무다. 그래서 정치활동을 하려면 휴직을 한다. 그리고 정치적 상황이 종료되면 다시 복직을 한다. 선거 때가 아니더라도 중요 관직에 등용되면 휴직했다가 임기를 마치거나 그 직을 버리면 곧 복직할 수 있다. 이것은 대단한 특권이다. 심지어 어떤 교수는 이런 방식으로 교수 생활 거의 대부분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초중고 교사들은 이러한 교수의 특권을 단 하나도 누릴 수 없다. 이유는 뭘까?


해방 이후의 특수 상황에서 비롯된 인력 풀의 부족을 채울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대학이었다는 사실과 역시 5.16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 정부의 허약한 정책 능력을 채우는 대안이 바로 대학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등용된 대학 교수들은 완전 백지상태에 있던 자신들의 신분과 자격, 그리고 정치활동 등에 대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자신들에게 매우 유리하도록 만들었고(그럴만한 능력과 상황이 주어졌다.) 그 상황은 별다른 저항 없이 현재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이것은 거의 ‘무주물 선점’이었다. 즉 ‘주인 없는 것은 먼저 본 사람이 주인이다’라는 법 격언이 그대로 적용된 사례다.


그 판에 끼지 못한 초중고 교사들은 자신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법적 제도적 장치로 여러 가지 권리들이 제한되었을 뿐, 어떠한 특별한 권리도 주어지지 못했다. 오로지 국가의 명령에 복종하는 공무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대학 교수나 초중고 교사나 교육이라는 대 전제 앞에 지극히 평등하고 또 평등하여야 한다. 위 고등 교육법에도 그렇게 명시되어 있는 것처럼 학생을 가르치는 일이 교수든 교사든 주요 임무다. 그런데 교수는 정치적 활동이 보장될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또 심지어 그들을 위해 캠프에서 정부에서 관료로 일을 하고 다시 대학으로 돌아갈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있는 반면, 교사들은 정치적 중립을 강요받으면서 그 어떤 정치적 의견 표명이나 행동도 제한받고 심지어 징계의 대상이 된다. 이것은 명백히 잘못된 제도이며 장치가 아닌가!(혹시 교수는 공부를 많이 하고 교사는 그렇지 않다는 편견을 가진 분들이 있을 수 있다.)


교육 자체가 사실은 매우 정치적인 일이다. 교사로서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것에는 사실만 있지는 않다. 사실과 가치를 동시에 교육한다. 어떤 경우에는 가치만을 강조할 때도 있다. 이 가치의 문제가 곧 정치와 연결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교사는 정치적 중립의무를(사실은 정치적 중립의 보장이지만) 강요받고 있다. 심각한 아이러니다.


덧!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교수님들의 오해가 없길 바랍니다. 교수님들을 향한 글이 아니라는 점 분명하게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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