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감각 중에서 가장 직접적이고 동시에 가장 불확실한 감각은 視覺이다. 직접적인 것에 무게를 두어 視覺의 중요성에 대하여 널리 회자되는 말 중에 “몸이 천 냥이라면 눈은 구백 냥”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지만 약간 틀어서 생각해보면 우리가 눈으로 보는 사물의 판단은 대부분 시각에 좌우될 수도 있다는 다소 불편하거나 위험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화가는 시각에 의존하여 그림을 그리고, 관람자 역시 시각에 의하여 그림을 본다. 하지만 그림에 화가의 상상력이나 의지, 그리고 예술성과 지향점 등이 부가되고 거기에 관람자의 상상력이나 목적성이 더해지면 그림은 단지 시각에 의한 판단에만 머물지는 않는다.
화가 엄경근이 묘사한 것은 부산에 위치한 달동네다. 화가의 시각에 투영된 달동네가 화가의 손에 의해 캔버스에 묘사되고 관람자인 나는 그 묘사를 본다. 화가에 의해 이미 객체화된 그림과 나 사이에 있을, 그 비좁고 불확실한 틈새에 대한 이야기를 세 개의 단어를 통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1. 공간
화가가 캔버스에 색채나 선, 또는 여백을 통해 창조해내는 캔버스 속의 ‘공간’은 매우 특별한 관념의 居處이다. 사고 작용이 만들어 낸 캔버스 내부 ‘공간’에 대한 인식은 동 서양의 인식 차이가 현격하다. 서양 회화에서 ‘공간’은 매우 계산된 영역이다. 심지어 매우 정교하게 ‘공간’을 배치하여 관람자에 의한 해석의 여유를 주지 않으려 한다. 반면 동양 회화에서 '공간'은 관람자에게, 심지어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에게 조차도 넓게 열려 있는 자유의 영역이다.
엄경근의 그림은 서양식 재료와 서양식 표현 방법에 매우 충실하지만 그림 속 ‘공간’ 가치의 지향점은 동양의 그것에 맞닿아 있다.
마치 우주처럼, 대양처럼, 그리고 우리 내부에 존재하는 상상과 꿈의 영역처럼 ‘공간’을 사용하는 엄경근의 ‘공간’에 대한 의견은, 관람자인 우리에게 달동네가 가지는 상징성을 심화시키고, 더불어 관람자가 가지는 주관적 감정 이입에 큰 역할을 한다.
2. 색채
캔버스에 색을 입히는 채색의 영역은 화가의 고유성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특히 현대 회화에서는 묘사된 사물의 느낌을 결정하는 것은 형태보다는 ‘색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서양에서 ‘색채’의 본질에 대한 논의는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위대한 천재 ‘Johann Wolfgang von Goethe(괴테, 1749~1832)’의 수많은 저작 중에 『Zur Farbenlehre』(색채론, 1810)’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당시까지 거의 불변의 정설로 믿어왔던 또 한 명의 위대한 천재 ‘Isaac Newton(뉴턴, 1642~1726)’이 쓴 『Opticks: Or, a Treatise of the Reflexions, Refractions, Inflexions and Colours of Light』(광학: 빛의 색조와 굴절 및 반사에 관한 논문, 1704)’의 내용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반박하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괴테’가 해석하는 ‘색채’는 ‘뉴턴’이 설명한 빛의 반사라는 단순한 과학적 지식에서 한 발 나아가 그 반사된 빛, 즉 ‘Farbe(Color, 색채)’가 가지는 속성에 대하여 ‘괴테’의 방식대로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괴테’의 ‘색채’ 이론은 과학적으로도 ‘뉴턴’과는 상이한 견해를 피력하였을 뿐 아니라, ‘색채’를 독립적인 대상으로 여기고 거기에 형이상학적 잠재성을 부여하여 ‘괴테’ 이후 많은 서양화가들이 ‘색채’를 통해 그들의 내면을 드러낼 단서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어둠과 빛에 대한 ‘괴테’의 생각은 이러하다. “어둠은 빛의 결여가 아니라 빛의 상호작용이다. 색채는 빛의 상호작용, 즉 어둠에서 나왔다. 흰색이 어두워지거나 혹은 흐려지면 노란색으로 나타나고, 검은색은 밝아지면 파란색으로 가까워진다.”(괴테, 색채론. 장희창 역, 2003)
엄경근의 그림에는 ‘명도'와 ‘채도’가 낮은(거의 검은색에 가까운) 색들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괴테’의 이론에 따르면 달동네의 어둠(화가 엄경근의 심상)은 빛이 없는 단순한 어둠이 아니라 빛에 의해 드러나지 않는 복잡하고 다양한 색채의 혼합 상태인데, 여기에 외부의 빛이 스며들면 노란색과 푸른색, 그 외 다양한 ‘색채’로 화면에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간혹 달 빛에 의해, 가로등에 의해 그리고 알 수 없는 광원이 비치기만 하면 어둠 속의 달동네는 언제든지 따뜻하고 밝은 색채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3. 객체들
엄경근의 작품 속에 존재하는 객체들의 종류는 다양하지는 않다. 달동네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식별되는 객체가 그리 많을 수는 없다. 다만 그 한정된 공간 속에서 화가가 화면에 묘사한 객체는 대체로 두 종류로 나뉜다. 처음은 매우 직접적이면서 동시에 고정적인 달동네의 집들, 골목길, 가로등, 꽃과 나무가 있다. 형태와 색채의 다양성이 있기는 하지만 화가의 인식과는 무관하게 존재하는 것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가변성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객체로서 형태의 객관성을 넘어 작가의 상상과 철학이 개입될 가능성이 있는 존재들, 이를테면 달(주로 그믐에 가까운 달), 가로등의 조명, 빗줄기, 버스, 하늘, 배, 피아노, 슈퍼맨, 늙은 왕자(어린 왕자가 늙었다.), 사람(아버지, 어머니, 화가 자신), 연, 나비 등이 있다.
하나의 화면 속에 성질이 다른 여러 객체들이 혼재하면서 자연스럽게 ‘알레고리(Allegory)’가 생겨난다. ‘알레고리’란 문학적 용어로써 굳이 해석하자면 ‘은유(Metaphor)’보다는 더 길게 지속되며 보다 충만한 잠재 의미(함의)를 뜻하는 말이다. 엄경근의 모든 그림에는 이 알레고리가 정교하게 작동한다. 작가 스스로 의도에 따라 그 장치를 숨겨 놓았는지 아니면 객체들의 상호작용으로 자연스럽게 알레고리가 생성되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림을 오래 보면 볼수록, 그림을 보고 난 뒤 생각하면 할수록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의미들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아마도 이런 작용의 바닥에는 분명 작가의 삶과 희망 그리고 꿈이 있을 것이고, 그 모두를 하나의 꿰미로 연결하는 세상과 사물에 대한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있을 것이다.
엄경근 화백의 진주문고 전시를 축하하며 감히 쓰다.
2021년 12월 22일 오후 중범 김준식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