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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Jun 30. 2016

Cour d'une maison de paysans,

재계(齋戒), 비어있음.

Cour d'une maison de paysans, aux environs de Paris, 1865-70.Oilon canvas, 46.5cmⅹ56cm

9. 장자 오르세를 걷다. 


Jean-Baptiste-CamilleCorot(쟝 밥티스트 카미유 코로)가 묘사한

Courd'une maison de paysans, aux environs de Paris 

(파리 근교의 농촌 풍경) 1865-70


18세기 말 대두된 신 고전주의의 충실한 계승자이자 인상주의의 시작점에 위치하고 있는 Jean-Baptiste-Camille Corot(쟝 밥티스트 카미유 코로)는 1796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코로는 루앙에서 학업을 마치고 1815년 파리에 있는 한 직물 가게에 수습사원으로 일하다가 26세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화가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그는 당시 신 고전주의 풍경화가로 이름이 높았던 Achille-Etna Michallon(아실 에트나 미샬롱)과 Jean-Victor Bertin(장 빅토로 베르탱)으로부터 화가 수업을 받았는데, “자연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진실하게 묘사하라”던 미샬롱의 조언은 그의 평생 지침이 되었다.


신 고전주의가 지향하는 것은 독일 출신의 Johann Joachim Winckelmann (요한 요하임 빙켈만)이 ‘그리스 예술 모방론(1756)’에서 말한 고대 그리스의 이성적 고귀함과 18세기 말과 19세기 중반까지 유럽을 지배했던 계몽주의였다. 


코로 역시 그런 관점에서 농촌을 보았고 그 결과 파리 근교의 농촌 풍경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화려한 궁궐과 많은 사람들, 구획된 거리와 상점들이 즐비한 도시와는 너무나 다른 풍경, 이를테면 겨울을 위한 나무더미, 모이를 주는 아낙과 닭들, 친구와 노는 아이들이 그림 속에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다.


코로의 1825년부터 1828년까지 3년간 이탈리아 체류와 그 뒤 두 차례에 걸친 이탈리아 여행은 그의 예술적 성장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프랑스로 돌아온 이후에는 파리 근교의 퐁텐블로 숲에서 새로운 예술적 영감을 찾았고 그는 그곳에 거처를 마련하였다. 당시 많은 프랑스 화가들이 코로를 뒤따라 퐁텐블로 입구의 작은 마을인 바르비종으로 거처를 옮겼는데 이것으로부터 바르비종 파(École de Barbizon)가 탄생하게 된다. 


코로의 작품은 두 종류의 경향으로 뚜렷하게 구분되는데 그 처음은 소수의 고객을 위해 실물을 직접 보고 그린 상냥한 풍경화이고, 다른 하나는 살롱전이나 시장 판매를 위해 그린 매우 정교하고 세련된 양식의 공식적인 인물화였다. 


이 그림은 처음 경향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으로서 이렇게 두 부류의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은 그림 판매의 수입에 크게 영향 받지 않을 만큼 부모로부터 담보된 안정된 재정 상황이었다.


이 그림의 이면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흐름은 바로 Jean-Jacques Rousseau(장 자크 루소)의 범신론적 자연관인데 루앙에서 교육받을 당시 코로는 이미 루소의 사상에 심취하였고 그 뒤 그의 예술적 사고의 지표로서 한결같이 유지된 의식이었다. 농촌의 일상 중 한 장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코로의 이 그림은 신 고전주의라는 큰 틀 속에 계몽적 사상과 범신론적 자연관이 융화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장자 이야기


재계(齋戒), 비어있음.


顔回曰(안회 왈) : 안회가 말하기를. 

回之家貧(회지가빈) :" 저의 집은 가난해서 

唯不飮酒(유불음주) : 술 먹을 생각조차 못하고 

不茹葷者數月矣(불여훈자수월의) : 자극성 있는 야채를 못 먹은 지가 여러 달입니다. 

如此(여차) : 이렇게 하면 

則可以爲齋乎(즉가이위재호) : 재계라 할 수 있겠습니까?" 


공자가 대답한다.

曰時祭祀之齋(왈시제사지재) :" 그것은 제사 지내기 위한 재계이지 

非心齋也(비심재야) : 마음의 재계는 아니네." 

回曰(회왈) : 이에 안회가 물었다. 


敢問心齋(감문심재) :" 감히 마음의 재계를 묻습니다" 

仲尼曰(중니 왈) : 중니가 대답했다. 

若一志(약일지) :" 마음을 하나로 모아 

无聽之以耳而聽之以心(무청지이이이청지이심): 귀로 소리를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듣게. 

无聽之以心而聽之以氣(무청지이심이청지이기): 또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운으로 듣게. 


耳止於聽(이지어청) : 귀는 소리를 들을 뿐이고 

心止於符(심지어부) : 마음은 밖에서 들어오는 것에 맞추어 깨달을 뿐이지만 

氣也者(기야자) : 기운은

虛而待物者也(허이대물자야) : 비어있어서 무엇이나 그대로 받아들이지. 

唯道集虛(유도집허) : 진리는 오직 비어있는 곳에 모이며 

虛者心齋也(허자심재야) : 비어있음이 바로 마음의 재계라네."


장자 인간세


그러면 마음을 비우는 상태(심재 : 心齋)는 어떠한 것일까?

‘제물론’에 의하면 길(道)은 사람이 걸어 다님으로써 만들어지고, 물(物)은 사람이 불러서 그렇게 이름 붙여지게 된 것이다. 이를테면 사람들이 걸어서 생긴 통로를 보고 따라 걸어가게 되면 그것을 길이라 부르고, 또 사람들이 특정 대상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 말이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외부에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귀와 눈을 안으로 향하게 해야 심재 할 수 있다는 것이 장자의 의견이다. 동시에 걷고자 하고 말하고자 내부에서 일어나는 마음을 밖으로 두라고 권한다. 이렇게 해서 안과 밖이 통 하였을 때 비로소 걷고 또 말하여야 한다. 


단지 길이라서 걷거나 대상이 있다고 해서 말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이야기다. 정리하자면 우리 외부의 귀와 눈으로부터 알고 있는 것과 내부의 마음이 알고 있는 선험(경험)을 깨끗하게 비우고 완벽하게 깨끗한 상태로 사태를 확인하라는 이야기다. 쉽지 않다. 


장자가 그렇게 해야 한다는 근거는 그 경험이라는 것에 대한 지극한 의심에서 비롯된다. 즉 경험의 무근거성에그 원인이 있다. 어떤 경험도 없는 것은 막 세상에 태어난 아기의 상태다. 사실 이 말도 문제는 있다. 본능은 경험이 아닌가?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경험만큼 사람을 안심시키는 것도 드물다. 아는 사람이 있으면 우선 음이 놓이고 예전에 했던 적이 있는 일은 또 하기를 덜 주저한다. 반면 경험하지 못한 것은 늘 불안을 동반한다. 그런데 장자는 매 순간 경험 없는 듯이 세상사에 임하라 한다. 참 말이 말이 아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 마음을 비워야 한다면 이해되는 면도 없지는 않다.


장자 제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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