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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Apr 17. 2022

연초록, 그리고 세상


『장자』’지북유’는 확실히 불교적 뉘앙스가 강하다. 『장자』가 쓰인 시기엔 아직 불교가 중국에 전해지기 전이라 이런 이야기가 말이 되지는 않지만 내 느낌엔 그렇다는 이야기다. 연초록이 온 천지를 뒤덮지만 세상일은 정말 만만하지 않다. 도대체 향후 5년을 어찌 보내야 할지 답답함에 자꾸만 이런 글들이 눈에 들어오는 모양이다.


光曜가 無有에게 물었다.


광요! 빛난다는 이미지의 이름이다. 빛 광, 빛날 요…. 뭔가 확실하게 빛나는 존재임에 틀림이 없다. 좀 더 나아간다면 스스로 빛을 내는 것이니 주관적인 이미지다. 발광까지는 아니지만 스스로 빛나는 이미지로서 智慧의 느낌을 가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무유는 있는 것이 없다는 의미인데 있다가 사라졌으니 깨달은 자다. 더불어 경계의 이미지도 있다.  


 “선생께서는 있습니까? 아니면 있음도 없습니까?”


광요는 더 물을 수 없어서 할 수 없이 無有 선생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그 모습은 멀고 텅 빈 듯하여 종일토록 살펴보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며, 들어보아도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으며, 손으로 만져보아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光曜가 말했다.


“지극하구나.

그 누가 이 경지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나는 無가 있는 경지까지만 도달할 수 있고 無조차 없는 경지에는 도달하여 無無의 경지에 미치지 못하니 어떻게 이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반야심경의 “무무명역무무명진”과 비슷하지 않은가?


연초록 잎과 땅에서 솟는 애기 붓꽃, 구슬 붕이에게 이 멍청하고 답답한 세상에 사는 내가 참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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