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초조가 느껴지는 만년의 괴테
오늘 날 우리가 보고 있는 Ludwig van Beethoven의 초상 중 왼손에는 악보를 오른손에는 연필을 들고 눈동자는 약간 위를 응시한 채 악상에 골몰하고 있는 모습을 그린 독일 화가는 당대의 황제와 유명인의 초상화를 많이 그린 독일 출신의 화가 요셉 칼 슈틸러(Joseph Karl Stieler 1781-1858)이다.
슈틸러는 독일의 남서부 마인츠에서 태어났지만 주로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서 활동했다. 슈틸러의 아버지, 아우구스토 프리드리히 슈틸러(August Friedrich Stieler)는 동판 화가였다. 이런 이유로 어린 슈틸러는 당연히 아버지로부터 처음 미술에 대한 훈련을 받았다. 슈틸러는 미니어처 화가(건축의 완성도를 위한 축소 그림)로서 시작했으나 나중에는 인물화(초상화) 전문의 화가로서 활동하면서 당대 저명인사의 초상화를 많이 그리게 된다.
20대 후반에 이미 그는 프랑크푸르트에서 초상화 작가로서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기 때문에 1816년에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초청으로 그들의 위대한 조상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였던 프란시스 1세의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비엔나를 방문하였다. 앞서 말한 베토벤의 초상화를 그린 것은 오스트리아에서 머물던 1820년에 그린 그림이다. 독일로 돌아 온 슈틸러는 당시 바이에른 공국의 황제 루트비히 1세의 요청으로 바이에른 왕국의 여름 궁전이었던 님펜부르크(Nymphenburg)의 갤러리를 장식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그린 그림이 바로 괴테의 초상이다.
지금의 독일 중부지역인 당시의 바이마르 공국에 머물고 있었던 괴테는 이미 70대 후반을 넘겼으며 독일 전역에 명성을 떨치고 있던 위대한 인물이었다. 40대 초반의 젊은 슈틸러는 아마도 매우 긴장한 상태로 이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괴테가 들고 있는 종이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모티브로서의 편지였을 것이고 만년의 괴테는 귀족적 풍모와 함께 위엄과 권위가 느껴진다. 특이한 것은 시선인데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를 보고 있지 않고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다. 이것은 슈틸러의 의도인지 아니면 실제 괴테의 시선이 그러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 길이 없지만 괴테의 나이(79세)로 짐작 하건대 이 초상화 작업은 매우 힘들었을 것이고 그런 연유로 빨리 그림을 그리기 바라는 괴테의 마음이 이러한 모습으로 묘사 되었을지도 모른다. 괴테 만년의 초상은 거의 이런 눈동자로 묘사되고 있다.
괴테의 초상화 중 인상적인 것은 요한 티슈바인(Johann Heinrich Wilhelm Tischbein 1751~1829 티슈바인 집안은 화가 및 판화가의 집안으로 유명하다. 뿐만 아니라 이름들도 비슷하다.)이 그린 ‘캄파냐 평원의 괴테’(1787, 독일 슈테델 미술관 소장)가 있다. 이탈리아 여행 중 이탈리아 남부 폼페이 부근 캄파냐 평원에서 폐허가 된 폼페이를 배경으로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는, 젊은 시절 괴테의 낭만적 모습이 인상적인 그림이다. 그와는 반대로 슈틸러의 괴테 초상화는 이제 쇠락해가는, 심지어 자신의 초상을 그리는 시간이 힘겨운 노인의 모습으로서 위엄과 권위 뒤로 얼핏 얼핏 불안과 초조가 느껴지기도 한다.
도상학적인 관점에서 슈틸러 초상화의 특징은 사람 중심의 그림이다. 배경이나 주위의 풍경을 가능한 배제하고 인물에 집중하며 빛의 사용에 있어서도 당시의 관점으로 본다면 다분히 비논리적인 인물 전체에 골고루 빛을 주고 있다. 반대로 배경은 극단적으로 어두운 색으로 처리하여 가능한 초상화의 주인공을 부각시킨다. 16세기 초의 또 한 명의 천재 알브레히트 뒤러의 초상화가 생각나기도 한다. 이런 그림의 방식은 슈틸러가 유명인을 상대로 그림을 그리면서 인물 중심의 기능적 측면에 중점을 두는 것, 즉 지금의 관점으로 본다면 사진 촬영과 비슷한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을 것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