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혼란스러우니 짐짓 딴청을 부리고 싶어 진다. 옛날 그림을 이리저리 보다가 이 그림이 보인다. 완당이 살았던 시절도 호시절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도 유배를 간 처지이니 오늘날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완당은 이런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까?
고사소요
단정히 머리를 정리한 선비께서 듬성듬성 나무가 있는 숲길을 걷고 있다. 淸秀한 선비의 모습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조선의 선비는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복식의 특성상 그의 옷은 중국의 漢服(중국식 발음으로 한푸) 임에 틀림없다. 뿐만 아니라 우리 선비들이 갓을 쓰지 않았을 때 쓰던 탕건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연유로 그를 중국 사람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거기다가 逍遙라는 말을 붙이고 있다. 소요라 함은 노, 장의 이야기로부터 유래한다. 특히 《장자》 첫 편에 소요하면서 노닌다는 뜻의 逍遙遊가 등장한다. 이 경지는 매우 난해하여 여러 가지 비유가 등장한다. 결국 소요유란 사물의 본래 경지를 이해하고 분별이 없는 상황에서의 자유로움을 이야기한다.
완당이 그 경지를 이해하고 이런 문인화를 그렸는지 혹은 그 경지를 흠모하며 이런 그림을 그렸는지 알 수 없지만 완당이 그린 高士와 그 高士가 이룬 소요의 경지는 쉽게 우리에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다만 조선 시대가 유교 중심의 사회였고 유교적 최고 경지는 군자라는 것을 감안해 본다면 이 그림의 경지는 좀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완당의 문인화 중 최고의 경지는 단연 세한도이다. 고사소요보다 훨씬 뒤에 그려진 세한도는 완당의 유배생활에서 오는 외로움이 그림 속에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고사소요의 분위기는 세한도가 가지는 孤高함에 孤寂을 더한 분위기 없고 단지 孤高함은 있다. 그리고 거기에 세한도의 풍경보다는 보다 부드럽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거친 듯한 준법이 오히려 그림의 깊이를 준다.
간송미술관 소장 24.9 *29.7 아주 작은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