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 작 명선
그는 명필이 확실하다. 우리 역사에 전무후무한 명필인 그의 글씨와 문인화를 보고 있으면 그의 힘과 정신이 느껴진다. 그의 글씨는 종이를 뚫을 듯 강렬하고 拙美와 洗練美가 혼재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글씨의 힘과 회화적 감흥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하지만 그의 모든 것이 훌륭한 것은 아니다. 그는 중국을 흠모했던 당시의 선비들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여러 가지 것에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茶山 정약용조차도 중국에 대한 흠모의 정이 그의 저작 곳곳에서 읽힌다. 근대 초의 지식인들이 일본을 흠모했고, 그 뒤의 지식인들이 미국을, 그리고 우리의 예술가들이 유럽을 흠모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선진 문물에 대한 존경과 동경, 그리고 애정을 표시하는 것이 ‘나쁘다’ 혹은 ‘나쁘지 않다’로 표현될 수는 없다.
하지만 일부 상류층이 가지고 있었던 대국, 혹은 선진국가에 대한 흠모와 애정이 우리나라와 민중에게 준 역사적 상처와 고통을 생각해보면 부정적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저 먼 신라로부터 조선조까지 우리의 역사에 중국은 어떤 나라였는가? 역사의 변곡점마다 그들 중국은, 힘을 앞세워 우리를 급박하였고 우리의 상류층은 미리 알아서 그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자세를 견지하였다. 그 뒤 일본에게, 그리고 지금은 세계의 경찰이라고 떠드는(실제로는 폭력배나 다름없는) 미국에 속절없이 고개를 조아리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아는 한 조선 시대의 거의 모든 성리학자들은 성리학의 개조 주돈희(주자)의 나라 중국을 동경했고, 심지어 그가 살던 동네와 정자 이름을 그대로 가져와 자신의 동네 정자에 이름을 붙였다.(경북 안동에 있는 우리나라 대표적 서원인 소수서원의 景濂亭 - 경염정이 대표적 예이다. 염계(濂溪)는 주자의 아호이자 주자가 살던 동네에 흐르던 작은 계곡 이름이기도 하다. 거기서 이 정자의 이름을 가져왔다.) 우리가 아는 한 조선 시대의 거의 모든 성리학자들은 성리학의 개조 주돈희(주자)의 나라 중국을 동경했고, 심지어 그가 살던 동네와 정자 이름을 그대로 가져와 자신의 동네 정자에 이름을 붙였다.
어쨌거나 다시 김정희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 茗禪(명선)이라는 글 옆에 쓰인 작은 글씨의 내용이 문제라면 문제다. 명선이라고 지칭된 사람은 추사의 오랜 벗 초의 선사를 가리키는데 그 옆의 작은 글의 내용 중에 최고의 茶를 이야기하면서 중국의 名茶이름을 사용한 것이 문제다. 즉 몽정(蒙頂)과 노아(露芽)라는 차 이름인데 몽정은 지금의 쓰촨 성(四川) 몽산의 정상에서 나는 차로서 중국 제일의 명차로 인식된 차이며 노아는 장쑤 성(江蘇) 동남방산에서 나는 차 이름으로서 명, 청 시대의 중국 최고의 차로 이름이 높았던 차이다.
자신의 벗 초의에게 차를 보내 줄 것을 재촉하며 보낸 이 글의 옆에 쓰인 차 이름을 초의의 차에 비유한 것 때문에 위대한 추사를 감히 비난하는 것이 조금은 우습지만 지금 이 땅에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친일의 망령과 갈수록 위세를 부리고 있는 친미의 폐습이 어쩌면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라 우리 유전자 깊숙이 박혀 있는 事大의 정신이 아닐까 하는 몹시 쓸데없고 쓸쓸한 나의 생각이 이 글씨의 완벽한 아름다움을 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