偶吟*
虋花幽紫影 (문화유자영) 맥문동 보랏빛 그림자 그윽하더니,
隱遒夏之季 (은주하지계) 슬그머니 여름의 끝은 다가오네.
然後方稱美*(연후방칭미) 지난 후 아름답다 칭송하는 것은,
人時無別乃 (인시무별내) 사람이나 시절이나 다르지 않네.
2022년 8월 24일 밤. 개학을 하고 아이들 소리를 들리는 학교에 있으니 참 좋았다. 교장실을 지나며 제 각각 인사를 한다. 먹을 것을 내놓으라는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건강을 묻는 녀석도 있고, 자기가 다녀온 곳이 좋았다며 너스레를 떠는 녀석도 있었다. 1학기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쌩 지나가는 아이도 있고 그냥 고개만 까딱하고 지나가는 아이들도 있다. 방학 때 부쩍 큰 아이도 있고 별 변함이 없는 아이들도 있다. 몇 명은 코로나로 오지 않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제 맥문동이 절정을 넘기고 있다. 그윽한 저 보랏빛이 저물면 가을은 그렇게 시작이 될 것이다. 참 격렬하게 무덥고 지루했던 2022년 여름이었다. 우리는 다시 한 계절을 보내고 다음 계절을 맞이할 것이다. 그 어떤 저항도 허락하지 않는 완벽한 변화 앞에 우리는 그저 망연할 뿐이다.
시절이나 계절이 지나면 늘 그 계절이나 시절이 그립다. 별 대수롭지 않았던 사람이라도 그 사람을 보내고 나면 역시 그 사람이 문득 그립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보내는 이 시절은 지나가도 그리워하지 않을 것이고 그저 빨리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90년대를 ‘환멸의 시대’라고 노래한 #정태춘의 마음이 그러했던 것처럼 2022년 내 마음도 그러하다.
* 偶吟(우음)은 얼핏 떠오르는 생각을 시로 읊는다는 의미인데 많은 시인들이 이 제목으로 한시를 썼다.
* 조식 선생의 偶吟 중 결구를 차운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