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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2022 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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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Sep 08. 2022

깨달은 것처럼.

似朝徹*


閒坐望半月 (한좌망반월) 잠시 앉아 반월을 바라보니,

將衆妙彼焉 (장중묘피언) 저기 온갖 오묘함이로다. 

暗天而寂寂 (암천이적적) 어두운 하늘은 고요할 뿐,

無爲而不言*(무위이불언) 말하지 않음이 무위이니.


2022년 9월 8일 아침에 짓다. 9월 6일 태풍이 지나간 저녁 밤하늘에 반달은 참 오묘했다. 여름 내내 가두어 두었던 카메라를 꺼내 300mm 렌즈를 달아 달을 찍었다. 달은 지구 주위를 초당 약 1km로 돌기 때문에 망원렌즈 속에 달은 금방 초점이 달라진다.(지구의 자전 속도가 더해진다.) 카메라의 셔터 속도를 거의 1/4000초 정도로 맞추고 조리개는 최대한 조여 달을 찍는다. 그래야 달이 카메라 속으로 날카롭게 들어와 달의 거친 표면과 알 수 없는 문양의 음영을 보여준다.


 

우주가 오묘한 것은, 우주의 모든 것이 우리 인간의 인식 범위를 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주를 상상하게 되고 나아가 우주적 사태를 인간의 삶, 심지어 길흉화복과 연결시키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어리석음을 넘어 무모함 그 자체임에도, 21세기 이 첨단 과학의 시대에서 조차 그런 미신에 가까운 일들이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가지기도 한다.(특히 이 나라의 정치권력) 



칼 세이건이 생전에 마지막으로 펴낸 책, 《The Demon-Haunted World: Science as a Candle in the Dark(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과학, 어둠 속의 촛불》을 읽어보면 우리가 가진 그런 이상한 믿음은 (심지어 신념에 가까운) 인간 내부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과학에 대한 무지와 과학적 의심의 부재가 낳은 것이라고 세이건은 판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시 멍하게 천공에 뜬 반달을 보고 있으니 세이건의 목소리보다는 근거 없는 미신으로부터 파생된 달의 이야기에 마음이 쏠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나 역시 어쩔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이라…… 



* 조철朝徹: 아침 햇살과 같은 경지. 어둠을 꿰뚫는 아침 햇살과 같이 모든 것을 밝게 비춘다는 뜻. 《장자》 대종사 편, 남백자규와 여우의 대화에서 일종의 단계별 수행과정을 제시하는데 네 번째 단계가 조철이다. 外天下→外物→外生→朝徹→見獨→無古今→入於不死不生의 순서이다.



* 無爲: 노장의 입장에서 무위無爲는 곧 道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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