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세에 처음 주례를 섰다. 실업계 고교에 근무했던 것이 주요한 원인이다. 그 뒤 지금까지 수 십 쌍의 주례를 섰다. 제자가 압도적이고 친구들의 자제나 심지어 동료 교사의 주례까지 선 적이 있다.
한 삼사 년 주례가 뜸했다. 주례 없는 결혼식이 대세가 되기도 했고 가끔 주례 부탁을 해도 정중하게 주례 없는 결혼을 안내하고 또 권하기도 했다.
며칠 전 지난 2010년부터 근무했던 사천의 00 고등학교 졸업생이 전화를 했다.(가끔 인스타그램에서 근황을 보기도 하고, 3~4년 전 전화 통화를 하기도 했다.)
뵙고 싶다고 … 부탁드릴 것이 있다고 해서 어제저녁 잠시 만났다. 부탁은 다름 아닌 주례 부탁이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00의 결혼식 주례는 두 말 없이 흔쾌히 수락했다. 00은 걱정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혹시 거절하시면 어쩌나 싶어.
집에 돌아와 00과의 10년이 지난 일을 생각해 보았다.
00은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나에게 웃으면서 이런 말을 한 것으로 기억한다.
“군에 입대해서 총기를 가지고 탈영한 다음 선생님을 찾아오겠습니다!”
나 역시 웃으며 기다리고 있겠다고 말했다.
그것이 00과 내가 대면으로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 그 뒤 SNS를 통해 가끔 안부를 묻기는 했다. 군대 있을 적에 왜 아직 탈영하지 않았냐고 놀리면 아직 탄약이 없어서 그렇다고 농담을 주고받은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내가 00의 담임이었다. 문제아는 아니었지만 약간의 흡연, 그리고 수업 중 불량한 태도로 나에게 자주 지적을 받았다. 00의 환경이나 지나온 과정을 모두 알고 있는 나로서는 정말 00의 삶이 걱정이 되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 늘 00은 요리조리 핑계를 대고 피하기만 했다. 화를 내기도 했다. 더러 심하게 몰아붙이기도 했다. 모욕도 주었고, 또 설득도 해 보았지만 좀체 좋아지지 않았다.
그리고 3학년이 되어 다른 반이 되었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그 아이를 지속적으로 괴롭혔다.(?) 오죽했으면 졸업식 날 그런 이야기를 했을까? 그래도 나는 당당했다. 왜? 진심으로 00의 삶을 걱정했기 때문에 어떤 부끄러움도 없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은 부끄럽기 한이 없다.
어제 만난 00은 아름다운 청년이 되어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그렇게도 내가 강조하던 사람과 닮아가고 있었다. 진심은 통하는 모양이다. 어제 00은 나에게 말했다. “고등학교 3년은 정말 고통”이었다고 이야기했다. 나 때문에. 내가 확 죽어버렸으면 하고 바랄 때도 있었단다. 하지만 지금 그 시절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을까 하고 입에 발린 이야기도 할 줄 아는 반듯한 청년이 되어 있었다. 고맙고 흐뭇했다.
10월 16일 00의 결혼식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