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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2022 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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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Oct 04. 2022

오두막에 살고 싶네.

欲愚居衡宇 (욕우거형우) *


數冊展小卓 (수책전소탁) 여러 책을 탁자에 펼치고,

妙香嗅秋菊 (묘향후추국) 기묘한 향기 가을국화로다.

時時樂吉他 (시시악길타) 때때로 기타 튕기니,

鯉魚噞無中 (리어엄무중) 무심한 잉어만 뻐끔.


2022년 10월 4일 오후. 점심을 먹고 산책을 하다가 어제 읽은 정약용 선생의 與猶堂全書 권 1, 제황상유인첩 題黃裳幽人帖이 생각났다. 퇴직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정약용 선생의 이야기가 먼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는다. 짐짓 생각만이라도 그런 곳에서 살고 싶다는 욕망을 가져 본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못하다. 아니 불가능하다.


집에 책이 많이 있으려면 일단 집이 넓어야 한다. 이것부터 이루기 어렵다. 가을 국화 향기를 맡으려면 작은 정원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이것도 아주 어렵다. 지난 20여년을 비둘기 집 같은 아파트에만 산다. 거기다가 기타를 튕기려면 별 걱정이 없어야 하는데, 지금 사정으로 미루어 걱정이 없을 수 없다. 거기다가 마당 안에 잉어가 살 연못은 참~ 언감생심이다. 이래 저래 어려운 것이 분명하지만 마음이야 뭘 못하겠는가! 그저 마음뿐이다.


그러고 보니 제목의 형우는 말이 형우이지 사실은 큰 저택이다. 다산의 황상유인첩을 읽어보면 더 난감해진다.  


* 형우는 도연명의 귀거래사에 있는 말이다. 형문이 있는 집이라는 말인데 형문은 아주 허술한 대문을 말한다. 따라서 오두막집으로 번역한다. 乃瞻衡宇 載欣載奔(내첨형우 재흔재분)이에 내 오두막집을 바라보며, 곧바로 기쁘고 반가운 마음으로 달려가네.<陶潛 歸去來辭>


표지 그림처럼 하늘만 보아도 좋으니 굳이 사는 곳을 따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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