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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2022 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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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Oct 12. 2022

2022 한시집 '선성' 跋文

* 올해 책 제목을 이렇게 삐딱하게 배치했다. 창의력이라고 알아주기 바란다. 


跋文


그럭저럭 다시 1년이란 세월이 갔다. 살아 숨 쉬고 있으니 참 다행이고 고마운 일이지만 욕망은 늘 그 이상을 요구한다. 불현듯 날씨가 서늘해졌다. 이러다가 봄, 가을은 어쩌면 먼 추억이 될지도 모르겠다. 아침에 긴 팔 와이셔츠를 입었고 겉옷도 조금 더 두꺼운 옷으로 바꿔 입었다. 여름용 양복을 며칠은 더 입을 수 있을 것 같아 드라이를 했는데 조금 애석하다.


살면서,

하나의 사실에 집중해보면 하나의 사실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하나로 연결된 모든 사실들이 조금씩 드러난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사실들을 따라가다 보면 모든 것이 확장되어 가끔은 스스로의 능력 부족에 자괴감이 들 때가 허다하다. 


5언 절구, 7언 절구 즉, 20자 혹은 28자에 담는 나의 생각은 이와 같이 하나의 사실에 연결된 많은 고리에 대한 나름 진지한 관찰이다. 늘 무능과 무식에 좌절하고 답답해하지만 2014년 이후 8년 동안 쉬지 않고 이 일을 계속해 오고 있다. 당시엔 약간의 자부심이나 과시욕도 없지 않았지만 2~3년 뒤부터는 늘 후회의 연속이었고, 요즘은 그만 둘 명분을 찾는 일이 잦아졌다. 올해도 봄을 넘기며 이 생각에 빠져 한 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사물에 대한 관찰은 세월이 지날수록 사물보다는 생각의 관찰로 이어졌다. 당연한 과정이다. 그런데 생각이란 순간에 일었다 사라지기 때문에 늘 긴장을 늦추지 않아야 생각을 관찰할 수 있다. 나에게서 일어나는 생각을, 스스로 관찰하는 일은 조금은 소모적일 수 있다. 그러나 내가 관찰하는 나의 생각은 외부세계와 나를 연결 짓는 가장 분명한 통로이다. 나는 그 통로를 관찰하고 나아가 ‘나’와 ‘외부세계’를 동시에 관찰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늘 그렇지만 허망한 욕심이다.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해마다 책의 제목을 먼저 짓고 글을 쓴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글의 내용이 제목을 따르는 경향을 보인다. 뿐만 아니라 일상의 일정 부분은 책의 제목에 영향을 받고 또 주기도 한다. 그 해 책 제목을 정하는 것이 거창하게 칸트가 말한 ‘a priori’에 해당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과대망상을 품기도 한다. 올해의 책 제목은 ‘繕性’인데 이상하게도 올해 내내 마음을 조각보처럼 기워야 할 순간을 많이 경험했다. 


기록을 남기는 것은 여러 측면에서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를 제외하고 이 책을 보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이 책 내용은 사실 위험은 고사하고 무의미 그 자체다. 특별히 위험이라 할 만한 것은 없다. 가끔 아주 희미하거나 또는 연결고리를 따라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 보면 문득 책의 내용으로부터 상처받을 가능성은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여기 있는 모든 글은 거의 위험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 물론 구체적 위험보다는 추상적인 위험에 가깝겠지만! 그래도 위험은 위험이다. 한 가지 기대할만한 것은 글로 저장된 이런 위험은 시간이 흐르면서 발효하여 가끔 아름다운 향기를 내기도 한다.  


아직 월말까지 시간이 있지만 예측컨대 작년보다 5~6편이 줄어들 것 같다. 시적 의경조차 팍팍했던 2022년 봄! 그 삭막한 봄 때문이다. 


2022년 10월 기온은 떨어지고 하늘이 참 맑은 날 아침, 


지수중학교 교장실에서(2023년에는 분명히 이 장소에 없다.) 중범 김준식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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