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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2022 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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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Oct 21. 2022

시위를 당기다.

讚詞韻令粗卒詩 (찬사운령조졸시) 거친 졸시로 말의 울림을 찬양함.


附引弓弦 《시위를 당기다》에 붙임


摔跤拾時拯 (솔교습시증) 발 부리 차이면 줍고, 때론 건지고,

此中須作模 (차중수작모) 이 마음은 모름지기 창작의 본보기.

表往侃品瀏 (표왕간품류) 때로 겉은 강하지만 품성은 맑고 밝아,

廣嘈自評僄 (광조자평표) 넓고 다양한데 스스로는 가볍다 하네.


2022년 10월 21일 아침. 어제저녁 진주시 소재 진주문고에서 조문환 시인의 새 시집 《시위를 당기다》 북 토크에 참석하여 그 느낌을 아침에 옮겨 본다. 


시인의 이력은 매우 다양하지만 중요한 것만 이야기하자면, 하동군 악양 면장으로 재직하다 돌연 사직하고 유럽 여행을 다녀와 《괴테를 따라 이탈리아 로마 인문기행》이라는 책을 출간하였고 그 후 여러 권의 시집을 출간하였다. 뿐만 아니라 현재 하동에 있는 공정여행 플랫폼 ‘놀루와’를 운영하는 대표로서 하동이라는 천혜의 지역을 알리는 다양한 문화기획자이고 동시에 노인 글쓰기 학교를 운영하기도 한다. 그 외에도 매우 다양한 역할을 해 내는 하동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다.  스스로 지역주의자라고 부른다.


나와의 인연은 올 초에 ‘진주 문고’ 대표님의 소개로 알게 되었는데 비슷한 연배로 금방 친해졌다. 지난 4월에 우리 학교 아이들을 데리고 하동 녹차 밭 체험을 했는데 그때 시인은 '놀루와' 대표로서 우리를 안내하여 아이들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제공하였다. 그 일을 아이들은 지금도 이야기한다.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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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시에 대해 내가 이야기하는 것은 참으로 분에 넘치는 일이지만 한자로 된 시를 쓰는 사람으로서 몇 마디 이야기를 해 본다.


1. 시위라는 모티브


활시위에 대한 가장 분명한 느낌은 ‘긴장’이다. 그것도 아주 팽팽한 ‘긴장’이 활시위가 우리에게 주는 느낌이다. 그 팽팽함을 극대치로 끌어올린 순간을 ‘당기다’로 표현한다. 그리고 그 시위를 놓으면 화살은 허공을 가르고 목표물을 향해 돌진하게 된다. 시인은 바로 이 순간의 팽팽한 긴장을 우리에게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러나 시집 어디에서도 팽팽함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평안하고 부드러우며 가끔은 곰살맞다.


시집 제목이 그렇다고 시집 전체가 거기에 따라야 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온전히 시인의 자유다. 하지만 시를 깊이 읽어보면 거기에는 더러 삶의 팽팽함이 있다. 눈에 보이는 물리적 팽팽함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잠재되어 있는, 그리고 항상 그 상황이 유지되는, 그래서 늘 잊고 있는 팽팽함을 어쩌면 시인은 자신도 모르게 찾아낸 모양이다.  



이 세상에는 누군가가 있다

누군가는 누군가가 되고 나도 누군가가 되는

(‘누군가’ 일부)



이 단어들 속에 잠재되어 있는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이 팽팽한 긴장을 보라. 사람과 사람의 연결, 그리고 그 속에 유지되는 관계를 시인은 ‘누군가’로 표현한다. 나로부터 다른 존재로 향하는 나의 의지와 관심은, 역시 나 아닌 누군가의 것과 동일할 것인데, 그 미량의 관계에서 오는 팽팽함을 시인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2. 시평에 등장하는 通曉


시인의 시를 ‘通曉’라고 이야기한 이빈섬 시인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맛있다’와 ‘멋있다’로 대비시킨 풀이에도 전적으로 동의하고 공감하면서) 몇 마디 첨언을 해 본다. 


《장자》 추수 편 ‘장자’와 ‘혜시’의 대화 중에 ‘물고기의 즐거움’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물고기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通’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장자’와 ‘혜시’의 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물고기와 통했냐는 것인데, 상식적으로는 물고기와 통할 수 없다. 다만 이런 이야기가 가능한 것은 동양 사상 깊이 내재되어 있는 ‘만물회통’ 사상에 있다는 것이다. 


즉, 동양에서는 모든 유정 무정의 물건들이 서로 통한다는 생각이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장자’와 ‘혜시’의 대화에서 ‘혜시’는 매우 현실적이 인물로, ‘장자’가 물고기와 통한다고 말하자 비웃는다. 그러나 ‘장자’는 ‘혜시’ 자네가 모르는 세계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비록 ‘혜시’는 매우 똑똑했지만 스스로와 만물이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장자’는 이 점을 이야기하면서 ‘나는 물고기와 통한다’라고 말해 버린다. 


시인도 만물과 가끔 통하는 부분이 있다. 


강에 새로운 다리가 생겼다

그 위로 붉은 기차가 불을 뿜고 달린다

새 다리로 기차가 옮겨간 후

헌 다리는 빈 다리가 되었다.

비로소 빈 다리는 강물을 보게 되었다

(‘빈 다리’ 전문) 


시인은 빈 다리의 마음을 알아 버린 것이다. 바로 '통효'의 순간이다. 그래서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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