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설명: 이런 봄날도 있었고 또 돌아 올 것이라는 믿음.
새벽 온도가 제법 차다. 귀마개를 했다. 나는 이상하게도 귀로 추위를 많이 느낀다. 이 날씨에도 누군가는 천막농성을 하고 누군가는 거리에 있다. 따뜻한 방에서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는 내가 조금 부끄러울 뿐이다.
살아가면서 가끔 이것이야말로 道가 아닐까 하는 장면을 마주할 때가 가끔 있다. 道의 본질을 도덕경에는 “분화되지 않은 어떤 것이 있으니 천지보다 앞서 생겨났다. 소리도 없다. 형체도 없다. 홀로 우뚝 서 변함이 없고 두루 운행하여도 위태로움이 없다.(도덕경 25장)”라고 되어 있다. 추위를 무릅쓰고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홀로 우뚝 서 변함이 없고, 두루 운행하여도 위태로움이 없다'라는 의미에서)도 어떤 의미에서는 道와 가까운 모습이 아닐까 싶다.
《장자》 ‘천하’ 편 마지막쯤에 ‘장자’의 논리적 상대자인 ‘惠施혜시’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
“지극히 커서 밖이 없는 것(至大無外)을 일컬어 ‘大一’이라 하고, 지극히 작아서 안이 없는 것을 일컬어 ‘小一’이라 한다.”《장자》 ‘천하’
이 말이 도덕경에서는 이렇게 표현되어 있다.
大曰逝, 逝曰遠 遠曰反.(대왈서, 서왈원 원왈반) (노자도덕경 25장)
큰 것은 외부를 향해 자꾸만 자신을 확장해 가려는 성향이 있다. 마치 우주가 엄청난 속도로 확장되는 것처럼! 그 상황이 ‘逝서’다. 단순히 ‘가다’라는 의미를 넘어 ‘뻗치다’, 혹은 ‘확장하다’라는 의미까지 포함한다.
이렇게 무한히 외부를 향해 확장하다 보면 마침내 일정한 한계에 도달한다. 이것이 ‘遠원’이다. ‘遠’은 단순히 아득히 멀리까지 갔다는 의미가 아니라 갈 데까지 가서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궁극의 지경을 의미한다. ‘遠’의 뜻은 ‘멀다’라는 의미와 함께 ‘심오하다’의 의미도 있다. 심오한 것과 궁극은 의미가 상통한다. 그래서 다시 돌아오니 그것이 ‘反’이다. 이때 ‘反은 ‘返’으로 해석하는 것이 뜻에 맞다.
새벽 공기가 차서 천막농성이나 거리 시위를 연상한 것으로부터 도덕경까지 너무 멀리 뻗어 나간 내 생각을 다시 돌이키니,
2022년 12월 5일 아침, 내가 사는 대한민국의 공기는 여전히 차고 무겁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