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도덕경 산책(21)

by 김준식

2022년이 끝나가는 이즈음, 자문자답.


1. 2023년은 나에게 희망적인가?


스피노자는 ‘에티카’에서 ‘희망’을 이렇게 정의(Definition)하였다.


XII. Hope is an inconstant pleasure, arising from the idea of something past or future, whereof we to a certain extent doubt the issue.


12. 희망이란 우리들이 그 결과에 대하여 어느 정도 의심하는 미래 또는 과거의 사물의 관념에서 생기는 비연속적인 기쁨이다.


일단 ‘의심하는 미래’라는 표현에 마음이 쓰인다. 의심이란 불확실성과 두려움에 기초한다. (=영어 ‘doubt’의 어원 중에는 ‘afraid’가 있다.)


여기에 미래까지 부가된다. 미래 역시 늘 불확실하다. 그래서 두렵다. 스피노자가 살았던 시대나 내가 살고 있는 시대나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인간의 삶 아닌가? 문득 스피노자나 내가 인간으로서 동일한 조건이라는 것에 슬쩍 안도하는 느낌도 든다.


스피노자의 희망에 대한 정의 중 결정적인 부분은 ‘비연속적인 기쁨’이다. 그렇다! 살아가다 보면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감정은 거의 비연속적이다. 스피노자의 통찰에 무릎을 친다. 가끔, 혹은 이따금 다가온 감정 탓에 우리는 늘 휘둘리게 된다. 지속적으로 그 감정이 유지되면 우리는 적응하고 마침내 마비되고 만다. 그래서 스피노자는 ‘비 연속적인’이라는 단서를 달았을 것이다.


다가올 2023년 역시 미래이고 미래이기 때문에 불확실하고 불확실하기 때문에 의심스럽고 또 두렵다. 그렇다고 그 불안과 의심에 몸을 완전히 맡길 수는 없는 법, 뭐라도 해 보아야 되는데……


이 연말에 딱히 방법이 떠 오르지 않는다. 하여 ‘희망’이라는 단어를 슬며시 지우고 싶다.



2. 2023년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뭔가를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은, 반드시 하지 말아야 되는 뭔가가 생겨나게 된다. 세상 모든 일이 모두 동전 의 양면 같아서 한 면만 존재할 수 없고, 한 면에 마음을 두는 순간 나머지 다른 면은 더 이상 마음에 둘 수 없다. 좀 더 극단적으로 한 면의 일이 강조되면, 다른 한 면은 관심을 두지 않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아예 관심을 두지 말아야 하는 것으로 변하곤 한다. 어쩌면 인간의 일이자 동시에 한계이기도 하다.


살아오면서 이 원칙에 크게 벗어나는 일을 나는 경험하지 못했다. 그래서 사실 반드시 해야 할 일 찾기가 더 어려워진다. 그렇다고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 제한이나 불이익이 따르지만 해야 만 하는 일이 사실은, 세상에 더 많다.


천재라고만 하기에는 너무나 대단한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 학자 ‘왕필’은 그의 ‘도덕경주’(사실 註라고 되어 있지만 내용이 원전보다 더 단출할 때가 많다. 어떤 것이 원전이고 어떤 것이 주석인지 헷갈린다. 어쨌거나 도덕경 26장에 대한 註)에서 이런 말을 한다. “무릇 사물은, 가벼운 것이 무거운 것을 실을 수 없고, 작은 것이 큰 것을 누를 수 없다. 움직이지 않으면서 움직임을 부리고, 움직이지 않음으로 움직임을 제어한다. 그러므로 무거운 것은 반드시 가벼운 것의 뿌리가 되고, 고요한 것은 반드시 성급한 것의 주인이 된다.”(“凡物, 輕不能載重, 小不能鎭大. 不行者使行, 不動者制動. 是以重必爲輕根, 靜必爲躁君也.”)


왕필의 도덕경 주석을 나의 이야기, 즉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과 엮기는 조금 애매하지만 표면에 드러난 일과 그 밑에 있는 일이 사실은 늘 한 몸처럼 붙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마음을 정리해 본다. 23년에는 어떤 일도 너무 적극적으로 매달리지 말고 동시에 어떤 일도 무시하지 않을 것을…… 더불어 그 일을 함에 늘 반대의 경우와 가라앉아 있어 보이지 않는 것을 생각해보며 움직이기로 한다.


교사로 살아온 지난 31년, 교장으로 살아온 3년 그리고 정년까지 2년 이 마음을 유지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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