展望 2023(1)
한 해가 저무는 무렵이 되면 사람들은 새로운 한 해를 전망한다. 전망이란 멀리 바라보는 것이다. 얼마나 멀리에 대한 기준은 없다. 년말에 보는 것이니 아마도 그 기간은 다가올 1년 정도가 최대치일 수 있다.
어떤 분야든 그 분야를 기준으로 미래를 전망하려면 그 분야에 지식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고 단순히 알고 있음을 넘어 그 분야에 탁견卓見을 가져야만 전망이라는 것을 내놓을 수 있다.
30년을 넘게 교사로 살아왔지만 교육이나 교육 관련 일에 대해서는 의견을 내놓을 수 있을 수준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매우 희미하기는 하지만 나 자신을 향해서는 제법 분명한 뭔가를 제시하기도 한다.
나는 매월 신문사에 교육 관련 글을 기고한다. 2022년 한 해 동안 12 꼭지의 교육 관련 글을 썼다. 대부분 자신에 대한 경계로 삼기 위해 쓴 글이다. 그 글을 생각해보고 그것에 터 잡아 2023년을 생각해 본다. 전망이라고 쓰려니 문득 부족해 보인다.
2022년 1월, 나는 불현듯 『철학이 없는 시대』라는 주제로 이런 글을 썼다.
“철학이 있는 삶이란 스스로의 삶에 대한 좌표 확인이다.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어디로 나아가는지, 나의 속도는 적당한가? 에 대한 생각과 태도가 철학이 있는 삶의 기본이다. 사람들은 위대한 철학자의 이야기에 기대고 싶어 하지만 사실 그 위대한 철학자의 삶은 우리 개인의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이라는 것을 무시한다. 물론 위대한 그들의 이야기는 시대와 세대를 통섭하기는 하지만 결국 그 이야기가 내 삶에 적용되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동기로 하되 결국 자신의 모습을 탐구하고 고민하는 것이 철학하는 자세다. 여러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몇 마디 위안의 잠언이 우리 삶을 윤택하게 할 것이라는 미련을 버리자. 결국 우리는 철저하게 혼자이며, 스스로 내 삶을 개척해야 한다. 그 바탕에 철학이 있다면 얼마나 다행이겠는가!”(http://www.dand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1723)
우리를 둘러싼 세상의 공기가 수상해질수록 우리는 자연스럽게 무엇인가에 위로받고 싶어 한다. 인지상정이다. 위로는 때로 힘이 되고, 위안은 우리의 삶을 부드럽게 한다. 사실이다. 하지만 딱 거기 까지다. 근거 없는 위로로 생긴 힘은 위로가 사라지는 순간 약해진다. 자생적이 아니라는 태생적인 한계다. 위안으로 부드러워진 삶도 비슷하다. 언제라도 거친 세상의 파도를 만나면 언제 부드러워졌는가 싶을 만큼 다시 거칠어지게 된다. 역시 내부적인 원인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계가 분명하다.
여러 이유로 자신의 위치를 점검하기 가장 좋은 시간이 한 해가 끝나가는 바로 지금이다. 그러고 보니 나의 한 해는 참으로 비루鄙陋했다. 2022년 역시 다른 여느 해처럼 이리저리 흩날리며 보낸 12개월이다. 얼마나 흐트러졌는지조차 모호하다. 스스로 측정해 볼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생각조차도 거의 하지 않고 열두 달을 살아왔다. 하지만 연말이 되고 흐트러져 있음을 자각하는 순간, 홀연히 그나마 조금 정리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이 ‘철학이 있는 삶’이 되는 순간이다.
2023년엔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부분의 지표와 지수가 엉망이라는 예측이 있다. 예측이 아니라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2023년엔 살아온 지난날과 견주어 나쁜 것은 최대가 되고 좋은 것은 최저가 되는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당연히 우리는 거칠어질 것이고 당연히 우리는 외로워질 것이며 그리하여 우리는, 한 해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될 수 있다. 당연히 더 많은 위로와 위안이 필요할 것인데 대부분은 그저 사탕발림 같은 것이어서 하루 밤이나 어쩌면 일주일은 버틸 수 있게 하겠지만 그 조차도 점점 강도가 높아져야 할 것이다.
그 유혹으로부터 조금은 물러나 있기 위해 가끔, 아니 자주 자신을 객관화하고 그 속도와 방향을 돌아보는 한 해가 되길 스스로에게 빌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