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을 제외하고 살아오는 내내 명절은 어수선했다. 어린 시절, 험난했던 가족사 탓에 다가오는 명절이 늘 무서웠다. 명색 종가라 각지에서 혈족들이 찾아와도 웃는 모습으로 오지는 않았다. 뿐만 아니라 제사를 모시고 나면 대부분 만취한 어른들의 넋두리와 고성으로 어린 나에게 명절의 뒤끝은 언제나 참담했다.
내 나이 60이 넘은 지금, 그 모든 일들은 정리되었고 이제 명절은 표면상으로 평화로운 날들이다.
하여 내 몸은 명절 내내 방 안에서 조용하다. 명절이라 가끔 친구들, 제자들 전화가 온다. 만나기 싫은 탓에 진주에 없다고 둘러댄다. 번거로운 생각에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겨울이라 온통 창문을 꼭꼭 닫고 있으니 아파트 속은 마치 진공처럼 느껴진다. 오후에는 오래된 영화를 한 편 보았다.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가 다시 영화에서 이야기하는 시간의 의미를 되새겨보니 어수선함이 다시 몰려온다. 별 수 없이 이번 명절도 이렇게 지나간다. 멀리 있는 아들이 카톡으로 세배를 하고 딸은 엄마와 수다를 떠니 그걸로 행복하다.
오후에 본 영화~
About Time(2013년 개봉)
아름다운 영화다. 뭐 다른 이야기가 필요 있을까? 이름도 몹시 어려운 '도널 글리슨(Domhnall Gleeson 읽을 때는 ‘m’이 묵음, 남자 주인공 팀 역)'의 어눌한 표정연기와 귀엽고 사랑스러운 표정의 '레이철 맥아담스(여자 주인공 메리 역)' 조화, 아버지 역 '빌 나이'의 능청스러운 연기는 최근 영화에서는 좀체 볼 수 없는 담백함이었다.
1. 시간에 대하여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영화가 내게 이렇게 물어오는 듯했다.
"삶이 다 그렇지 않은가?"라고.
삶의 진행은 단 한순간도 멈출 수 없는 절대적 연결이다. 단 1초도 돌이키지 못하는 시간의 몰인정함에 가끔은 절망한다. 하지만 또 가끔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 우리 삶의 과정에서 과거의 일정시점으로 되돌아가 다시 선택하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지금의 삶을 택할 것인가? 알 수 없는 일이다. 영화는 이 가정에서 출발한다. 주인공 팀은 과거 일정시점으로 돌아가 선택할 수 있는 능력으로 자신의 사랑을 얻게 된다. 하지만 어느 순간 과거로 돌아가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이 매우 많은 것을 파생시킨다는 것과 그로부터 현재는 전혀 다른 결과로 나타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행히 현실에서 시간의 흐름을 거스른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어서 이런 가정은 오로지 영화에서만 가능해지는데, 다른 영화에서처럼 그 가정이 기이하거나 엉뚱하지 않고 오로지 우리의 일상과 소소한 관계에서만 일어나게 하는 절제가 있어 영화는 매우 유쾌해질 수 있었다.
팀 아버지 역의 '빌 나이'는 평소 필모와 다르게 매력적이며 유쾌한 중년의 영국 사람으로 등장한다.
2. 영화의 품격과 행복함
품위 있는 영국 중년의 모습과 유쾌함이 공존하는 팀의 아버지 빌 나이의 연기는 아름다운 해변을 가진 영국 콘월지방의 풍광을 더욱 밝고 아름답게 한다. 조금은 억센 느낌도 없지는 않지만 정돈된 영국식 영어 발음이 주는 청량감과 품위는 강요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은근히 배어있는 향기처럼 기분을 좋게 한다.
레이철 맥아담스(매리 역)의 연기 또한 나른한 듯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생기 있고, 헤픈가 싶으면 또 때론 정숙한 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데 이 묘한 분위기가 주인공 팀의 연기와 어우러져 영화를 보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다. 결코 벅차지도 또 슬픔으로부터 오는 것도 아닌 편안한 일상의 행복, 그것이다.
3. 음악
모두 좋다. 특별히 늘어진 카세트 테이프처럼 들리는 ‘지미 폰타나’의 ‘일 몬도’가 귀에 남아있다. 지미 폰타나는 이탈리아 출신의 영화배우이며 가수이자 작곡가다. 1997년에 발표한 일 몬도(Il Mondo)는 2021년 모 방송사 클래식 경연 프로그램 덕에 유명해진 노래다. 이탈리아어로 mondo는 세상이라는 뜻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vuGXFe_ae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