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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Jan 24. 2023

범위의 문제

無失之 無得之


중국의 운문문언 선사께서 개창한 운문종雲門宗의 고승 설두雪竇 중현重顯이 지은 설두송고雪竇頌古에 대한 원오圜悟 극근克勤의 주석서가 벽암록인데 벽암록의 수 많은 화두 중에 하나가 ‘失之 得之이다. 하지만 오래 전 맹자께서도 조금 다른 의미의 ‘失之 得之’ 이야기를 했다. 조선 시대 崇儒의 분위기에서 불교의 이 화두 이야기와 맹자 이야기가 이리저리 떠돌다가 이런 이야기로 만들어졌을 것인데…… 그렇게 해서 등장한 말이 바로 '無失之 無得之'이다.


이야기는 이러하다.


옛날 중국의 초나라에 활을 잘 쏘는 왕이 있었다. 백발백중의 명 사수인 왕은 자신의 실력을 과신하여 사냥에서 오로지 몇 개의 화살만을 사용하였다. 사냥의 목표물에 반드시, 언제나 적중했기 때문에 목표물을 찾아 그 화살을 회수하여 다시 시용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명사수라도 실수가 있는 법이다. 어느 날 사냥을 갔다가 왕 자신이 가장 아끼는 화살(왕이 쓰는 것이기도 하고 또 몇 개만 사용했기 때문에 살촉은 보석으로 하고 살대는 구하기 어려운 대나무를 썼으며 깃털은 공작의 깃털을 사용하였다.)을 목표물을 향해 쐈지만 안타깝게도 허공을 가르고 말았다. 


귀한 화살이니 반드시 찾아야 하지만 목표물에 맞지 않은 화살을 숲 속에서 찾아내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많은 신하와 백성들이 화살을 찾아 숲을 헤매었지만 작은 화살을 찾아내기는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마침내 왕이 큰 마음을 내어 이렇게 말했다. 


초인실지楚人失之, 초인득지楚人得之!


초나라 사람인 내가(왕 자신) 쏜 화살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나의 강역(자신의 영토)에 사는 사람이 반드시 얻을 것이다. 이제 그만 화살 찾기를 멈추라고 지시했다. 


사람들은 왕의 그릇이 크다고 저마다 칭찬을 했다. 사실 조금 큰 그릇으로 보인다. 자신이 아끼는 물건을 찾지 않고 마음을 접기가 보통 사람도 어려운데 절대 권력을 가진 왕이 백성의 입장이 되어 찾기를 멈추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면 아마도 백성들로부터 엄청난 신뢰를 얻었을 것이다.(이 나라 정치하는 사람들이 배워야 할 태도이다.)


하지만! 그 후 맹자께서 이 이야기를 듣더니 초나라 왕이 그릇이 작다고 핀잔을 주면서, 어찌 초나라를 벗어나지 못하는가! 그러니 천하를 통일하지 못했구나!라고 이야기하며 楚人失之, 楚人得之! 에서 앞의 楚자를 지웠다. 즉 人失之 人得之로 바꾸었다. 역시 맹자답다. 사람이 잃어버렸으니 사람이 찾을 것이 분명하다. 


조선의 선비들은 이 맹자의 수정을 보며 맹자의 그릇을 칭송하기 바빴다.


조선 초, 몇 명의 선비들이 여름날 정자에 앉아 이 이야기를 하며 맹자와 유학의 지극함을 논의하고 있었는데…… 마침 지나가는 탁발승과 동자승이 있어 억불의 분위기에서 스님도 놀리고 자신들의 유학을 자랑하고자 정자로 그들을 불러 수박을 주며 이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랬더니 탁발승이 맹자의 그릇이 좁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선비들이 놀라 탁발승에게 “그럼 자네가 한 번 고쳐보게!”라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탁발승이 붓을 빌려 조금도 주저 없이 人失之 人得之 앞에 사람 인자를 지워버렸다. 


失之 得之!로 바꾼 것이다. 즉 잃어버렸으면 찾게(얻게) 된다!


선비들은 흠칫 놀랐다. 행색이 추레한 탁발승의 말이 자신들이 높이 받들던 맹자의 범위를 가볍게 넘어선 것이다. 그러자 동자승이 못마땅한 눈빛으로 탁발승을 보며 이야기한다. 


“스님도 좁습니다. 제가 고쳐볼까요?” 


탁발승도 선비들도 놀라 동자승을 보았다. 동자승은 붓을 빌려 거침없이 失之 得之 앞에 無자를 쓰는 것이 아닌가! 


즉 無失之 無得之! 잃은 것도 없고 얻는 것도 없다. 


맹자의 범위가 좁쌀만큼 줄어드는 말에 선비들은 혼비백산!


탁발승의 범위도 한치로 만드는 동자승의 놀라운 반전이 아닐 수 없다. 


세상의 이치가 이와 같다. 우리가 보고 듣고 생각하는 범위라는 것이 어쩌면 초나라 왕이나 맹자, 그리고 탁발승의 안목과 같을지도 모른다. 나름 거창하고 넓은 범위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단 한순간, 동자승의 무자처럼 그 범위가 속절없이 무너질 수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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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무자 화두는 조주종심 선사께서 세운 화두다. 조주는 당나라 말기 사람으로 유명한 남전참묘아南泉斬猫兒의 주인공 남전보원南泉普願의 제자이다. 무자 화두는 한 학인이 조주趙州를 찾아가서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조주는 “무無!”라고 답해 이 화두가 생겨났다. 부처님은 일체중생에게 틀림없이 불성이 있다고 했는데, 조주가 왜 없다고 했는가를 의심하는 것이 무자화두이다. 대혜종고 선사는 천만 가지 의심도 결국은 하나의 의심에 지나지 않으며, 화두의 의심이 깨뜨려지면 천만 가지 의심이 일시에 사라진다고 해 화두와 정면으로 대결할 것을 역설했는데, 특히 많은 화두 가운데 조주의 ‘무無’ 자 화두로 참구 할 것을 강력히 제창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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