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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Feb 05. 2023

受!

지난 봄 ... 음지에 핀 별꽃



1.


禍福同門


복과 화는 늘 하나의 문으로 들어온다. 좀 더 의역하면 복이나 화는 두 모습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되고 조금 방향을 틀면 복이나 화는 모두 스스로 만들어낸다는 이야기까지도 확장될 수 있다. 


회남자 제18편 인간훈에 이렇게 적혀있다. 


夫禍之來也人自生之福之來也人自成之禍與福同門利與害爲鄰非神聖人莫之能分


화가 온다는 것은, 사람 스스로 화를 만드는 것이고, 복이 온다는 것 또한 사람 스스로 이루는 것이니 화와 복은 같은 문이요, 이익과 해로움은 이웃이다. 하여 신이나 성인이 아니면 아무도 이것을 나눌 수 없다.


이를테면 하나의 사태 속에 화와 복은 공존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그 하나의 사태를 어떻게 수용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受(수), 즉 받아들이는 문제에 대한 동서양의 논의를 불교와 스피노자를 통해 보자.


2.


불교에서 受


受(수)는 산스크리트어 vedana다. 불교 유식학에서는 의식 속에 어떤 인상을 받아들이는 것, 즉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의 다섯 기관(五根)으로 느끼는 색성향미촉色聲香味觸을 말한다.


수는 내적인 감각기관 오근(五根-안이비설신)과 그것에 상응하는 외적인 대상들과의 만남에서 생긴다. 수에는 성질상 세 가지가 있다. 고수苦受, 낙수樂受, 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가 그것이다.  괴로운 것과 즐거운 것, 그리고 이도 저도 아닌 것이 있는데 이를 사수捨受(감각을 버림)라 한다. 


감각기관과 그 대상, 그리고 인식작용의 3 요소가 만날 때 거기에서 지각을 일으키는 심적인 힘 촉觸이 생기게 되고, 촉으로부터 수受가 일어나게 된다. 즉, 수는 촉을 조건으로 해서 일어난다.


하지만 인간의 의식작용인 수상행식受想行識은 각각 분리할 수가 없다. 수상행식을 하나하나 분리하는 순간 그 실체는 사라지기 때문이다. 수가 없이는 상이 일어나지 않는다. 상이 일어나면 수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한 시공간에 두 개의 실체가 공존하지 않기 때문이다. 불교는 이를 통해 인간의 의식과 의지, 그리고 감정의 흐름에는 분명한 ‘주인공’이 없다는 것, 즉, 자성自性이 없다는 것을 깨우치고 있다.(무자성)


하지만 수상행식으로 뭉쳐지면 이것은 지속적이고 복합적으로 일어난다. 그 하나하나의 가닥은 실체가 없을 정도로 미미하지만, 그것이 뭉치면 마치 얇고 약한 지푸라기를 꼬아 만든 새끼줄처럼 강력한 다발이 된다. 그래서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가 사과를 보는 순간 사과에 대한 識으로 인해 그 맛과 향, 느낌과 기분까지 동시에 일어난다. 그리고 그렇게 일어난 것들이 새로운 사과에 대한 인식의 레이어(층層)가 되어 기존의 사과에 대한 인식에 더해진다. 이렇게 점점 층이 쌓이고 굳어져서 마침내 ‘사과!’라고 하는 순간 우리의 인식 속에서 복합적인 경험으로 되살아나는 것이다. 즉 이것이 수상행식의 경로이다.


3.


‘에티카’에서의 인식


Part II. On the Origin and Nature of the Mind.(제2부 - 정신의 본성과 기원에 대하여)


PROP. XVI. The idea of every mode, in which the human body is affected by external bodies, must involve the nature of the human body, and also the nature of the external body.(정리 16. 인간의 신체가 외부의 물체에서 자극받는 방식의 모든 관념은 인간 신체의 본성과, 동시에 외부의 물체의 본성을 포함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당연한 결과로 인간의 마음은 자연을 인식한다. 즉 다양한 상황과 개체에 대하여…… 그리고 우리가 외부 물체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인식은 외부 물체 그 자체의 성질보다는 우리에게 이미 구성되어 있는 외부물체에 대한 본성에 귀결될 가능성이 더 많다.


불교의 인식론과 가까이 있지만 둘 사이를 갈라놓는 것은, 


PROP. I. Thought is an attribute of God, or God is a thinking thing.( 1. 사유는 신의 속성이다, 또는 신은 사유하는 것이다.) 즉 신이다. 물론 스피노자의 신은 자연이었지만!


4.


2023년 정월 대보름 날…… 고요하게 앉아 하루를 보냈다. 어제 오전 스님들에게 강의를 마치고 나를 초청한 회주 스님께서 차 한잔을 주시며 물었다.


“오늘 강의가 내가 듣기로 심지법문心地法問인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심지법문이란 마음을 여는 법문. 마음에 관한 법문이라는 의미다.


“……” 대답할 수도 아니할 수도 없는 질문이라 오히려 가만히 있었다.

강의료를 주신다 하여 정중히 거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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