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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Feb 17. 2023

교육, 그 깊고 깊은 ……

교육, 그 깊고 깊은 ……


며칠 전, 같은 학교에 근무하시다가 퇴직하신 선생님을 만났다. 2~3년 정도 되셨으니 이제 퇴직 이후의 삶이 제법 정착되신 그분께서 하신 말씀을 내내 곱씹어 본다. 


그분 말씀을 요약하자면 대충 이러하다. “이제 우리 사회는 거의 모든 곳이 포화상태여서 우리 손자, 손녀들은 더 이상 같은 방식으로 살 수 없을 것 같다. 표면적인 변화가 아니라 근본적인 변화가 없으면 우리 손자 손녀들은 아마도 매우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초중고 교육은 여전히 좋은 대학 입시만을 목표로 하니 참 걱정이다. 교육은 변하기 어려운데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하고 있다.” 


인공지능(요즘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는 chat GPT라는 프로그램이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있다.)은 나날이 더 방대한 데이터로 무장을 하니 미래는 어쩌면 인간은 인간 스스로 만든 도구에 스스로 지배당하고 마는 무시무시한 디스토피아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아마 모르긴 해도 얼마 가지 않아 인공지능의 지식을 뛰어넘는 인간은 나오지 않을 것인데(이미 그런가?), 그런 순간이 오기 전에 우리는 교육 현장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몇 가지 용어를 정리하면서 미래 교육을 생각해 본다.


1.     지식과 지혜


지식(知識, Knowledge)은 대상에 대한 분명한 인식認識이나 이해를 말한다. 주로 교육, 훈련을 통해 획득된다. 철학적으로는 인식론(Epistemology)의 범주에 속한다. 인식론의 문제는 매우 복잡하고 이 글의 논지와는 다른 방향이라 여기서 이야기하지 않기로 한다.


지혜(智慧, Wisdom)는 대상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하여 사태를 정확하게 처리하는 능력이다. 즉 지혜는 지식을 바탕으로 하여(그렇지 않은 경우도 가끔 있음) 사태를 분별하여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통상 지혜는 ‘통찰력’이나 ‘슬기로움’, 그리고 때로 ‘현명함’등으로 표현되는데 공통적인 것은 어떤 움직임을 반드시 동반하다. 이를테면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을 역시 정확하게 실행하는 능력이 지혜일 수 있다. 


한자를 풀이해 보면 그 뜻이 더욱 분명해진다. 智는 知와 해日의 뜻이 만난 회의 글자다. 이를테면 ‘밝은 앎’ 쯤으로 새겨볼 수 있겠다. 慧는 빗자루를 뜻하는 혜彗와 마음 心이 결합된 형성 글자인데 위에서 말한 것처럼 어떤 움직임, 즉 실행으로 옮겨지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알고 있는 것으로부터 그 앎을 실행으로 옮기는 것이 지혜라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세대를 교육하고 있는 우리는 그들에게 지식과 함께 지혜를 가르쳐야 하는 무거운 책임감을 지게 된다.


현재 교육현장에서 미래 교육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미래에 사용될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를 만들거나 창조하는 일이 대부분인데(물론 그 일도 매우 중요하다.) 정작 미래가 되면 하드웨어든 소프트웨어든 인공지능을 가진 어떤 존재들이 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것인데, 미래 교육을 그것으로만 믿고 추진하는 현재의 정책은 사실 미래를 준비하는 교육과는 무관해질지도 모른다.


교사로서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미래를 어떻게 준비하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지식보다는 지혜를 알려주어야 하는데, 산업사회에서 성장했고 교육받은 지금 우리 세대가 그 지혜를 아이들에게 알려 줄 수 있을 지도 역시 의문이다. 산업사회야 그저 암기해서 그대로 옮겨놓으면 매우 훌륭하다고 평가받았지만 지금 그런 방식은 이미 의미 없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어쨌거나! 


2.     배움과 익힘


배움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다. 콕 집어 이것이다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지만 각각의 정의에 대부분 수긍이 된다. 그만큼 배움이라는 말이 가지는 함의가 넓고 크다는 반증이다. 


‘배우다’라는 동사만으로 의미를 한정하면 그 의미 중에 반드시 ‘익히다’라는 의미가 동반된다. ‘익히다’는 ‘익다’에서 나왔으니 ‘익다’의 의미를 보자! ‘익다’는 일반적으로 형용사로 사용되는데 '여러 번 해 보아 서투르지 않은 상태'에 있음을 말한다.(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종합해 보면 배움은 반복(익힘)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얻어가는 과정이다. 몇 해전부터 우리 눈에 익숙한 ‘배움 중심’ 교육과정이란 극단적으로 이전 시대의 '반복학습'의 유려한 말투인 셈이다.(반론의 여지 있음) 다만 위에서 말한 산업사회의 단순 암기와는 다른 뭔가가 ‘배움’에는 있다고 보는 것이다. 큰 틀에서는 사실 '암기'와 '배움'을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지 방법적 착오에 빠지기도 한다.


하나의 사실(대상)을 인식하기 위해, 즉 사물 혹은 사태에 대한 지식을 가지기 위해서는 반복적으로 익히는 것이 최선의 학습방법인 셈이다. 이런 방식의 학습법은 공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바로 "學而時習之~"가 대표적인 예다. 배우고 익히는 것을 분명하게 구분한 논어의 태도는 수 천년 지난 지금도 교육의 중요한 방법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미래에도 지금의 배움에 대한 어떤 철학은 분명히 살아남아 활용될 것인데 그것만 아이들에게 잘 전달한다면 인공지능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미래라 하더라도 여전히 인간만이 세상(교육)의 핵심을 쥐고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3.     미래교육


확실히 ‘미래’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현재 모든 분야에서 우리는 ‘미래’와 만나게 된다. 여전히 현재를 살고 있는 나와 우리인데, 반드시 다가올 ‘미래’를 이렇게 애써 당겨 경험해야 할 만큼 그 ‘미래’가 절실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없다. 세상의 흐름은 내 의지와는 전혀 무관하다.


미래를 나타내는 영어 ‘future’의 어원은 의외로 간단하다. “that is yet to be; pertaining to a time after the present”(아직 오지 않은; 현재 다음에 오는 시간과 연관되는)로 풀이해 놓고 있다. (온라인 어원사전, © 2001-2022 Douglas Harper)


한자 '未來'도 그저 오지 않았다는 의미가 강하다. 그러면 오지 않은 시간을 이렇게 자주, 다양한 분야에서 언급하는 저변에는 그 오지 않은 시간에 대한 불안감을 바탕으로 하여 준비準備와 나아가 선점先占의 욕망까지 다양한 심리적 요인이 깔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분명하게 이야기하지만 현재 유통되고 있는 ‘미래 교육’은 미래의 교육이 아니라 미래를 예측하기 위한 방법적 고민 중 하나일 뿐이다. 현재 가용 가능한 모든 기술과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교육 현장에서 시도해 보고 그 효과와 가능성, 그리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단서를 찾아내는 것이 목적이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기술이나 방법 또는 방향이 미래에 사용될 것이라고는 확언하기 어렵다는 큰 문제점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교육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이러한 교육의 방향이 마치 미래에 대한 대비 능력이나 또는 미래를 살아갈 능력인 것처럼 강조하고 심지어 마치 미래인 것처럼 현재를 꾸미고 있다는 사실이다. 2023년 2학기부터 경남교육청이 야심 차게 준비한 미래교육원이 운영될 것인데 미래교육원이 표방하는 미래에 대한 의제나 과제는 현재로서는 대단히 모호하다. (아마 곧 발표될 것인데 그 내용은 천천히 되짚어 볼 생각이다.)  


더욱 안타까운 문제는 미래 교육을 지향하고 있는 현재의 교육 인프라는 여전히 현재조차도 떠받치지 못하는 허약한 구조라는 것이다. ‘미래’라는 단어를 쓰기만 하면 마치 미래의 환경이 구축되는 착각을 우리는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직 교육현장에서는 현재의 도구로 이루어지는 현재의 교육조차도 원활하지 못하면서 감히 미래를, 미래 교육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현재 상황인 것이다. 막연하게 현재의 상황보다 더 향상되고 원활해질 것이라는 기대를 혹시 ‘미래’라고 착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4. 정년


곧 정년이 된다. 멈추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조금 교육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으니 얼마나 늦은 것인가? 위에서 말한 ‘지식과 지혜’, 그리고 ‘배움과 익힘’의 의미를 마음에 담고 아이들과 함께 할 날이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남은 기간 동안 헌신을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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