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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Apr 11. 2023

바람 불고 음산한 봄밤


바람 불고 음산한 봄밤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냄


1.

Louis Hector Berlioz  

Symphonie fantastique 제4악장 「단두대로의 행진 Marche au supplice」 

Allegro non troppo g단조 4/4 빠르지만 지나치지 않게  6분 54초



프랑스에서 태어난 베를리오즈는 처음에 부모의 요구대로 의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스스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23세의 나이에(당시로서는 매우 늦게, 지금으로도 매우 늦은) 음악의 길로 들어선다. 늦은 나이었지만 그의 천재성으로 이탈리아 유학 후 음악가로서 명성을 얻는다.


그의 가정생활은 매우 불행했고 개인적 삶도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다. 천재의 업보인가?


이 음악 ‘환상 교향곡’은 해리엇 스미드슨이라는 여자배우에 대한 그의 짝사랑하는 마음과 그녀에게 관심을 받지 못한 상심에 의해 작곡된 음악인데 최초로 음악에 소설을 도입한 완전한 표제음악이다. 표제음악이란 음악 외의 요소인 회화, 시, 소설, 풍경 등을 미리 설정할 후에 그것을 음악으로 세세하게 묘사하는 음악의 형식이다. 


해리엇 스미드슨과 베를리오즈는 결국 결혼했지만 결혼 생활은 매우 불행했다.


이 곡을 들어보면 선율이 풍부하고, 화성이 미묘하면서 모호하지만 매우 기능적으로 배열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다양한 조바꿈이 절묘하게 대조를 이루면서 관현악의 특성을 최대한 살리고 있다.


불운의 천재 베를리오즈는 당시 슈만이 있었던 독일에서 음악적 환영을 받았고 그의 조국 프랑스는 그의 죽음 이후에야 비로소 그를 재평가했다.


2.

영웅은 시대가 만든 허상이다.


베토벤 교향곡 제3번 E 플랫 장조 (내림마장조) 작품 55 "영웅"

Symphony No.3 in E-flat Major, Op.55 "Eroica"

1st movement: Allegro con brio

2nd movement: Marcia funebre (Allegro assai)

3rd movement Scherzo: Allegro vivace

4th movement Finale: Allegro molto 


이 곡은 1804년 봄에 완성되었다. 신들러의 「베토벤 전」에 의하면 베토벤은 프랑스 초대 집정관이었던 나폴레옹에게 바치는 이 곡의 부본을 프랑스 대사관을 통해 파리로 보내려고 하던 차에 나폴레옹이 5월 18일 황제에 즉위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분개해서 그 악보의 표지를 찢어버린 후 악보를 마룻바닥에 내동댕이쳤다고 한다.


베토벤을 이해하려면 그의 아픔을 이해해야 한다. 난청과의 싸움에서 얻어진 신의 음성 ‘합창 교향곡’에서 베토벤은 음악가를 넘는 그 무엇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웅장한 심포니의 반주에 맞춰 불러지는 쉴러의 시는 이미 지상의 음악이 아니다. 그렇게 이해된 베토벤은 나에게 늘 놀라운 음악의 표상이요, 음악의 중심이었다. 영웅이란 사전적으로 “보통 사람으로는 엄두도 못 낼 유익한 대사업을 이룩하여 칭송받는 사람”을 말한다. 스스로 음악의 영웅이면서 또 다른 영웅을 위한 음악을 작곡한 그는 과연 이 음악에서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했을까?


혁명 상황에서 나타난 코르시카의 젊은 장교 나폴레옹은 의회군을 이끌며 연전연승 마침내 사령관이 되고 그를 멀리서 지켜본 베토벤은 그를 위해 음악을 만들었다.


1악장: Allegro con brio 힘차고 빠르게


혁명 상황에서 나타난 여러 가지 상황들을 베토벤은 서주부에서 말하려는 듯 보인다. ‘앙샹 레짐’을 부수고 나타난 자유의 움직임과 그 속에서 빛나는 존재로 거듭난 청년 나폴레옹을 베토벤은 마치 이 모든 과정을 안내하듯이 관악과 현악으로 적절히 표현했다. Allegro con brio는 베토벤이 즐겨하는 빠르기이며 표현방법이다. 운명에서 그러했고 황제에서 그러하다. 작곡가의 삶이 결코 유쾌하지 못했으므로 유쾌하고 빠른 템포를 즐겨 사용했으리라.


가끔씩 들리는 타악기의 음들은 혁명파 내에서의 분열이나 로베스피에르의 불안을 나타내고자 함이었을까? 아니면 나폴레옹 개인의 인간적 갈등을 표현했을까? 원인이 무엇이든 ‘영웅’은 보통이상의 인간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어떤 위대함을 잘 표현하고 있다. 특히 현악기의 운용은 지휘자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베토벤이 추구하고자 했던 웅혼한 느낌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후반부로 가면서 조금씩 커지는 관악기 소리는 혁명이 성공하면서 나타나는 민중들의 외침이리라.


2악장: Marcia funebre; 불어 장송곡 (Allegro assai) 장송곡 풍이지만 가끔 매우 빠르게 진행되기도 한다.


장엄한 분위기를 내는 것은 혁명과정에 죽어간 사람들에 대한 장송처럼 음울하게 시작한다. 그러나 혁명은 피를 부르는 법이요. 피는 변혁을 위한 할 수 없는 과정이다. 베토벤은 유려한 첼로로 그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전주부에 오래 지속되는 현악은 날카로운 관악으로 이어져 이내 관악, 특히 피콜로나 플루트 그리고 희미하게 들리는 타악기소리들은 갑자기 거대한 합주로 이어지다 다시 현악으로 회귀하는 이를테면 죽음과 삶의 이중주, 그리고 영웅의 생애들이 혼합되어 나타나는 그리하여 마침내 빛나는 금관으로 마무리되는 - 마치 요한계시록에 있는 최후의 나팔소리처럼- 듯하다가 다시 처음의 주제로 이어지는 푸가형식을 따라 음악은 이어진다. 영웅의 삶이란 이리도 곤고하다 말인가? 돌연 멈추는 그리고 가늘게 이어지는 음악 뒤따르는 좌절, 갈등, 욕망, 환희 그리고 조정과 안정……. 그렇다 삶이란 이런 것들의 연속 아닌가?


3악장: Scherzo: Allegro Vivace


현악기들의 불안하지만 점층적인 시작으로부터 유니즌으로 폭발하는 진행이 반복된다. 4분 음표들이 16분 음표처럼 연주된다. 팀파니 소리에 뒤이어 등장하는 호른 합주는 새로운 시대에 대한 희망이었을 것이다. 마치 멀리 사냥을 나가는 무리들 뒤로 울려 퍼지는 음악처럼!


다시 서주부를 반복하는 것은 혁명에 대한 모호함을 멀리하고 오로지 확신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였을 것이다. 비바체의 빠름으로 악장을 마무리한다. 


4악장: Finale: Allegro Molto 대단히 빠르게


서주부를 강력하게 시작하면서 청자에게 암호 같은 메시지를 던진다. 문득 현악기의 독주가 이어지다가 유니즌으로 이어지지만 1악장이나 3악장과는 사뭇 다르게 매우 여리다. 베토벤 음악의 특징인 시간을 밀고 나아가는 느낌은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이전 시대의 춤곡 형식이 문득문득 등장하지만 완전한 형식은 아니다. 변주에 변주를 거듭하지만 주제의식을 잃을 정도는 아니다. 맑은 오보에 소리가 흐르면서 대미를 위한 준비를 하는데 악상기호, Allegro Molto와는 전혀 맞지 않는 분위기로 심지어 느리다.


거의 모든 베토벤의 음악에 사용되는 코다로 나아가는 팀파니와 관현악기의 합주는 쇼펜하우어의  이야기를 다시 떠 올리게 한다.    


『베토벤의 교향곡은 겉으로는 혼란스럽지만 그 밑바닥에는 놀라운 균형이 깔려 있다. 그의 교향곡은 얼마 가지 않아 아름다운 조화로 끝을 맺는 치열한 난투를 드러내고 있으며,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사물들이 생멸하고 끊임없이 공간을 넘나드는 세계의 본질을 충실하게 묘사한다. 그의 교향곡은 인간의 모든 감정과 격정, 기쁨과 슬픔, 사랑과 미움, 절망과 희망을 미묘하고 추상적으로 표현해 놓았기 때문에, 영혼이 충만한 하늘나라에 있는듯한 감동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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