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Ästhetik

우울

by 김준식

일요일 오후의 우울


토요일은 비가 하루 종일 내리더니 오늘은 환하다. 공기도 나쁘지 않다. 이번 주는 산행을 쉰다. 몸을 위한 일이 때로 몸을 괴롭히는 일이 되기도 한다. 삶에 있어 균형은 매우 중요한데 사실 우리 삶에 균형만큼 어려운 일도 없다.


집 앞에 산 빛은 이제 완전히 초록이다. 거스를 수 없는 순행에 의해 나타나고 사라지는 저 빛을 보며 나도 나이를 먹고 마침내 완벽하게 사라질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우리 삶이 무겁거나 혹은 지나치게 가볍다.

돌연 우울한 기분이 든다. 우울은 집중의 산물이기도 하고 해이함의 산물이기도 한 기이한 감정이다. 우울에 대한 기이한 해석이 있다.


15세기 독일 남부 뉘른베르크 출신의 ‘뒤러’(1471년 ~ 1528년)라는 화가가 있었다. 천재형이었던 그는 그런 자신의 천재성을 스스로 알았는지 대단한 ‘자존’의 인물이었다. 당시로서는 매우 드문 자신의 로고(싸인보다 더 정형화된)를 가진 화가였고 그것을 그의 그림에 표시하였다. 그가 남긴 많은 작품 중에 ‘우울’이라는 이름의 동판화가 있다.


1514년에 제작한 ‘우울Ⅰ’(MelencoliaⅠ)은 ‘뒤러’의 3 대 동판화(기사騎士 죽음과 악마, 서재의 성聖 히에로니무스, 멜랑콜리아Ⅰ) 중 하나인데 크기는 생각보다 작은 24.2cm × 19.1cm이다. 이 작은 화면 안에 매우 많은 상징이 묘사되어 있고 그것의 의미는 학자들마다 다양하다.


제목 뒤에 붙은 Ⅰ은 그에게 영향을 주었던 당대의 뛰어난 미술철학자인 아그리파( Agrippa von Nettesheim)와 관련이 있다.(숫자에 대한 상징적 이해) 이 판화 해석의 권위자는 19세기 독일 출신의 어윈 파노프스키( Erwin Panofsky)로 알려져 있지만 아직도 정확한 해석은 다양하고 모호하다.


도판을 보자!


도판에서 가장 지배적인 인물은 천사의 날개가 있는 옷을 입은 여인의 모습이다. 그녀의 발 부근에는 개가 있고 그녀의 드레스 벨트에는 많은 열쇠와 지갑이 부착되어 있는데 이는 권력과 부의 상징으로 이해된다.


그녀의 앞 오른쪽에는 한쪽 날개만 보이는 풋토(일반적으로 날개가 있거나 또는 없는 형태로 옷을 거의 입지 않거나 벌거벗은 것처럼 보이는 어린이 그림 또는 조각)가 커다란 맷돌(대부분 삶의 바퀴로 해석함) 위에 앉아 있다


망치, 펜치, 못, 톱, 대패, 직선자 등 물체가 바닥에 흩어져 있는데 이것들은 모두 예술가와 장인(주로 목수)의 도구에 해당한다.


구와 다면체 (두 모서리가 잘린 평행 육면체)는 위와 아래의 면은 두 개의 정삼각형(위에서 투사했을 때 주춧돌의 육각형 평면을 나타냄)과 여섯 개의 불규칙한 오각형이다. 12개의 모서리 중 6개의 모서리에는 정삼각형과 2개의 오각형이 만나고 6개의 모서리에는 3개의 오각형이 만난다.


바다와 다면체 옆 작은 공간에는 불타는 석탄 위에 주물 코가 달린 도가니가 있고 그 아래 핀셋 이 있다. 이는 아직도(15세기) 여전히 강력했던 연금술을 상징한다.


풋토와 여인 옆, 뒤에 있는 건물 벽에는 균형 잡힌 저울, 모래시계, 그리고 그 위에 8자리 숫자가 새겨진 해시계가 있지만 현재의 시간인지는 알 수 없다. 7개의 발판이 있는 사다리가 벽에 기대어 있다.( 이 부분에 대한 해석은 매우 다양한데 현실의 질서와 상황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종 아래에는 마방진이 있는데 가로, 세로, 대각선의 합은 각각 34가 되는 짝수(4) 마방진이다. 여기에 이 작품이 만들어진 연도인 1514라는 숫자가 포함되어 있다.(맨 아랫줄) 1514 숫자 앞 뒤로 4와 1이 있는데, 이는 알파벳에서의 위치에 따른 ‘뒤러’의 이니셜이다.(즉, A=1, D=4) 여인의 손에 있는 도구는 기하학과 수학의 상징이다.

알브레히트 뒤러의 모노그램


배경에는 바다, 육지, 왼쪽 절반에 도시가 있고 위의 어두운 하늘은 빛나는 별 혹은 혜성 및 무지개 혹은 고리(환)가 보인다. 도판을 보는 사람 입장에서 오른쪽과 위쪽에서 들어오는 빛 때문에 왼쪽은 어둠에 해당한다.(그 어둠 속에 마방진이 있다.) 무지개처럼 보이는 고리는 불행과 우울의 상징 토성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주변에 놓여 있는 도구와 뭔가를 만드는 풋토는 예술과 공예 사이의 위치한 중세적 상황을 의미한다고 알려져 있다. 당연히 다면체와 마방진은 르네상스 시대의 과학과 예술을 나타낸다.


그림 제목(우울)에 대하여 Erwin Panowsky는 이렇게 말한다. 네 가지 기질(중세의 체액 병리학에서 말하는 4개의 성격 유형, 즉 다혈질, 점액질, 우울, 담즙) 중에 우울은 창의성을 가능하게 하는 중 유일한 기질인데 뒤러는 이것에 착안하여 정신적 긴장이 매우 높았을 때의 위험을, 자신의 경험과 연결시켜 이 그림을 통해 의인화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Erwin Panowsky: Albrecht Dürer의 삶과 예술 . 이천일 옮김, 199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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