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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May 01. 2023

혐오(남성, 여성)증

오전에 #차승민 선생님이 페이스 북에 포스팅한 『맨 박스, 페미니즘』(권재원, 우리교육, 2023.) 독후감을 보면서 하루 종일 생각을 하다가 문득 떠오른 그림 이야기와 더불어 별자리 이야기를 올린다.


1.


그림이야기 - 오르페우스의 죽음(Mort d'Orphee 1866)

La mort d'Orphée, 206 × 133 cm, Paris, musée d'Orsay

오르페우스(Orpheus)는 숲의 요정 에우리디케(Eurydice)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게 된다. 그러나 에우리디케는 양치기 아리스타이오스의 끈질긴 구애를 피해 도망가다 그만 독사에게 복사뼈를 물려 죽게 된다. 신부를 잃은 슬픔에 괴로워하던 오르페우스는 마침내 저승 세계로 내려가 에우리디케를 데려오기로 결심한다. 


오르페우스는 현악기의 일종인 리라를 다루는 솜씨가 탁월했는데, 그가 리라를 타며 노래를 부르면 인간은 물론 모든 동물들과 나무, 돌덩이까지 감미로운 그 소리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그는 스틱스 강의 뱃사공 카론과 저승 문 입구를 지키는 머리 셋 달린 괴물 케르베로스를 이 환상의 리라 연주와 노랫소리로 사로잡아 무사히 저승의 왕 하데스와 왕비 페르세포네 앞에 도달할 수 있었다. 


하데스와 페르세포네는 오르페우스가 들려주는 천상의 소리에 감동해 에우리디케를 데려갈 수 있도록 허락했다. 다만 이승에 도달하기 전까지 오르페우스가 절대 에우리디케를 뒤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붙었다. 오르페우스는 부지런히 지상을 향해 올라갔다. 이윽고 어두운 저승 세계를 거의 다 벗어났음을 알리는 이승의 빛이 희미하게 비쳤다. 그러자 방심한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를 돌아보고야 말았다. 그 순간 사랑하는 아내는 다시 칠흑 같은 저승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이 일 이후 오르페우스는 절망 속에 나날을 보냈는데 이때부터 그의 여성 혐오(Misogyn)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에우리디케를 잊지 못하는 마음에 여성을 멀리하고 오직 소년들과 관계함으로써 동성애자가 되었다. 오비디우스의『변신 이야기』에 따르면 오르페우스가 트라키아에 동성애를 퍼뜨린 죄로 디오니소스 축제 때 여신도들에게 돌과 몽둥이에 맞아 사지가 찢겨 죽임을 당했다. 바로 그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은 것이 이 그림 오르페우스의 죽음(Mort d'Orphee 1866)이다.


이미 머리에 치명상을 입고 피가 흥건한 상태로 절명한 오르페우스의 손을 잡고 몽둥이를 높이 치켜든 살기 등등 한 여인의 모습이 화면의 중심에 있다. 그 뒤쪽으로는 악기를 부는 여인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축제(디오니소스 축제) 중임을 알 수 있다. 오르페우스가 죽었는지 확인하는 두 명의 여자 얼굴에는 알 수 없는 미소가 스친다. 광적인 축제의 장에서 동성애자 오르페우스를 처단하는 모습을 매우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그림을 그린 에밀 레비(Émile Lévy 1826-1890)는 풍속화가이자 초상화가이다. 로마 상을 수상하여 이탈리아에서 매우 정교한 드로잉을 익힌 뒤 귀국하여 신화에 근거한 풍속화와 개인적 초상화에 주력하였으며 주로 살롱 전시를 통해 그의 작품을 알렸다. 그는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1867년에 뢰종 도뇌르(Légion d'honneur)를 수상하게 된다.


2.


별자리 이야기 – 시리우스


밤하늘에 별이 많이 보인다. 봄밤은 흐리지만 며칠 선선한 날씨와 바람 덕에 하늘이 맑아 많은 별이 보인다. 북반구에 사는 우리가 볼 수 있는 별 중에 제일 밝은 빛을 내는 별은 단연 시리우스라는 별자리다. 정확한 명칭은 큰 개자리 α별이며 동양에서는 천랑성(天狼星)이라고 부른다. 즉, 늑대의 눈처럼 밝은 별이라는 의미다. β별 무르짐도 희미하게 보인다.

이 시리우스는 지구로부터 8.7광년 떨어져 있다. 언뜻 가까운 거리로 보이지만 사실은 무한의 거리이다. 시속 100km의 속도로 간다면 약 9억 3천만 년 정도 걸리는 먼 거리에 있다. 이 별은 아주 밝았기 때문에 오래된 이야기 즉 신화의 단골메뉴로 등장한다. 이집트에서는 이 별이 지평선으로 보이는 날부터 나일의 장마가 시작되어 이 별을 이집트의 암흑의 여신 ‘이시스’의 별로 보았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좀 더 재미난 이야기가 등장한다. 처녀의 여신이자 사냥의 여신인 아르테미스(로마명: 다이애나)는 거의 남성 혐오증(Misandry) 환자였다. 쌍둥이 남자 형제인 호색한 아폴론과는 전혀 딴 판이었던 이 여신이, 어느 날 사냥터에서 나체로 목욕 중이었는데 하필 이곳을 지나던 사냥꾼 악타에온이 이 비밀스러운 광경을 보고 만다. 남성혐오증 환자였던 아르테미스는 악타에온을 곧장 사슴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그 악타에온이 변해서 된 사슴은 악타에온 스스로 잘 조련해 놓은 사냥개들에 의해 갈가리 찢겨 죽게 된다. 이를 보던 제우스는 악타에온의 개들을 별자리로 만들었다 한다.(또는 오리온의 개들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 악타에온 이야기를 모티브로 근대 프랑스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그의 인식론에서 악타에온 콤플렉스(절시증窃視症, Scopophilia)를 이야기한다. 사르트르가 말하는 악타에온 콤플렉스는 “자연의 베일을 벗기고 드러내려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모든 진리 탐구의 기본은 ‘시각’이라고 생각하는 서양사고에 기초하는 것으로서 그리 별스런 이야기도 아니다. 


악타에온 콤플렉스를 풀이하는 사르트르에 의하면 여인의 나체 – 진리라는 관념이 포함되어 있다. “악타에온이 목욕하는 아르테미스여신을 보다 잘 보기 위해 나뭇가지를 옆으로 치우듯이 우리는 진리탐구를 가리는 장애물을 치움으로 나체를 드러낸다 “ 사르트르의 비유에서 보듯이 인식론적 원칙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서양 인식론을 통틀어 남성적인 것이었다. 반면에 시선의 대상, 즉 벌거벗겨지고 드러내어지는 것은 항상 여성으로 비유되었다. 뭔가 좀 찜찜하다. 관음증도 이 범주 안에 있다.


여전히 시리우스는 빛나고 있고 그 별빛을 보며 나 역시 여전히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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