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철학 2권 최종 교정을 하며.

by 김준식

1. 여름이 오는 길목

댓잎이 바람에 소리를 내며 출렁거린다.


여름이 오고 있다. 바람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그 알 수 없는 공기의 흐름은 흔적도 없이 나무를 흔들고 잎을 흔들며 마침내 나를 흔든다. 나의 내부를 흔든 바람 탓에 내 영혼 곳곳에 흩어져있는 감각의 촉수가 흔들리게 되고 그로부터 새로운 영감이 돋아난다.


시원성에 근거하여 본다면 고작 몇 개의 시각적 신호이거나 아니면 단순한 촉각이나 경험의 기억 이상의 것도 아닐 텐데 스스로는 그 감각의 촉수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고 그로부터 전혀 새로운 장면으로의 전환을 꾀한다.


즉, 바람으로부터 일어나는 몇 가지의 감각적 추론은 새로운 형태의 논리적 구조를 획득하게 되고 그로부터 다시 중첩적 기억으로 나의 뇌 어디쯤 쌓여 갈 것이다. 오늘의 기억은 지금 유효하지만 내일이 되면 유효성을 장담할 수 없다. 그것이 감각이고 기억이다. 흐려지는 것에 우리는 가끔씩 절망하지만 따지고 보면 흐려지지 않는 것을 더 두려워해야 하지 않을까?


이제 바람은 제법 짙어진 느티나무 잎을 흔들고 오리목의 열매를 흔들며 낮게 깔리면서 제법 자란 크로바 잎과 쑥부쟁이와 이름 모를 잡초를 흔들더니 이내 잠잠해진다.


2. 2023년 중학교 철학 2권 표지를 확정하다.


철학을 공부하여 얻는 효용이 그저 어떤 심오한 논리학의 문제 등에 관해 어느 정도 그럴듯하게 말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그것이 일상생활의 중요한 문제들에 관한 생각을 개선시키지 않는다면, 그것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위험한 말들을 사용하는 여느 기자들보다 우리를 더 양심적으로 만들지 않는다면, 철학을 공부할 필요가 무엇이겠는가! ("비트겐슈타인이 제자이자 친구인 노먼 맬컴에게 보낸 편지에서")


‘중학교 철학 2’ 마지막 교정을 보고 있다. 교정을 보면서 위 비트겐슈타인의 말이 다가온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성장하여 어른이 될 것이고 그들이 기성세대가 되었을 때 지금 우리보다는 좀 더 철학적인 삶이 되기를 바라면서 ‘중학교 철학 1’에 이어 ‘중학교 철학 2’를 펴냄에 스스로 당위성을 부여한다.


정치를 하는 사람은 정치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경제를 운용하는 사람들은 경제철학이 있어야 한다. 당연히 교육을 하는 교육철학이 있어야 한다. 정치철학이든 경제철학이든 또 교육철학이든 핵심은 성찰이다. 자신의 행위에 대한 엄정한 비판과 분석은 자신이 타인에게 요구하는 그 정도의 수준이면 다행이고 좀 더 자신에게 엄격해지면 엄격질수록 점점 위대해진다.


지금 이 나라의 정치 경제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 권력의 핵심에 있는 자들은 왜 철학을 가지지 못했을까를 생각해 본다. 한 가지 큰 이유는 그들은 철학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데 있다. 철학이 필요한 것은 나와 타인의 관계에서, 그리고 나와 세상의 관계에서 수평과 균형을 유지하려는 인간 悟性의 위대함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그들은 그것을 이미 폐기한 것이다. 폐기의 이유는 이러하다.


대부분의 그들은 대단히 명석한 학창 시절을 보냈고 사회로부터 촉망받는 존재들이었다. 스스로의 명석함과 주위의 관심은 점차 그들을 오만하게 만들었고, 그 오만함은 스스로의 삶에서 성찰과 배려를 폐기하게 만들었다. 폐기해도 아무런 저항이 없는 사회에 편입된 그들은 인간에게 부여된 도덕성 일부가 둔감해졌고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마침내 상실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것을 심화시키는 것은 그들이 속한 집단의 야만성에도 큰 원인이 있다.


야만은 후진 문명의 징표다. 정치, 경제, 교육의 상층부에 있는 집단이 후진적이라는 말은 언뜻 이해가 되지 않지만, 후진성의 핵심은 도덕률의 부재다. 문명사회에서 도덕률의 근간은 성찰과 배려다. 성찰은 자신에게로 향하는 모든 도덕률이고 배려는 타인에게 향하는 자신의 도덕률이다. 그런데 현재 이 나라의 상층부는 성찰과 배려를 폐기했으니 당연히 후진적이고 그것이 심화되어 마침내 야만적 상황에 이른 것이다. 외형은 인간의 모습으로 있지만 내면은 야수 그 자체다.


이들에게 회복하라는 것은 무리다. 이미 잃은 것은 다시 갖추기는 불가능하다. 차라리 자라나는 사람들이 그 상황으로 가지 못하도록 그나마 아직은 성찰과 배려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우리가 힘써 교육하고 모범이 되어야 한다.


이 나라 변방의 아주 작은 학교에서 시작하는 나의 철학교육은 이런 상황에서 무모한 도전이 분명하다. 여건은 물론이지만 상황도 그리 만만하지 않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모든 역사의 변화는 변방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과 하나의 작은 물방울이 거대한 흐름이 될 것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제 교장 임기 97일을 남겨두고 ‘중학교 철학 2’를 펴낼 수 있어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중학교 철학 3, 4, 5’까지 목차를 준비했으니 정년이 넘어서도 이 일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오늘 수업은 벌써 ‘중학교 철학 3’에 들어갈 쇼펜하우어의 ‘충족이유율’을 공부했다. 쉬지 않고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