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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Jun 30. 2023

불교의 인식(인식론을 위한 워밍업 3)

불교의 인식(인식론을 위한 워밍업 3)


서양 인식론이 사물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접근이라면 동양 인식론은 인간의 인식구조를 독립적 상황으로 파악하고 파헤치는, 어쩌면 인식론이라기보다는 마치 서양의 심리학과 유사한 접근을 보여준다. 하지만 선험*을 이해하기에는 오히려 동양적 접근이 용이함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현장'의 인식론을 보자!


중국의 '현장'은 인간인식의 단계를 9단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그중 최고의 9識을 아말라식阿末羅識(Amala-vijnana) 또는 암마라식菴摩羅識, 아마라식阿摩羅識이라고 부른다. 인간의 의식은 지속적으로 진화해 제8식 아뢰야식 위에 반야般若의 경지인 제9식이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흔히 말하는 부처의 경지로서 보통의 우리는 다가갈 수 없는 경지다. 보통의 우리에게는 기본적으로 다섯 개의 감각기관, 즉 눈, 귀, 코, 혀, 몸을 통한 색, 성, 향, 미, 촉의 5식과 그 위에 정신적 부분인 의식을 합쳐 6식六識이 있다고 가정한다. 


그리고 5식과 6식을 바탕으로 제7식, 즉 말나식末那識이 있다. 말나식이란 자아의식自我意識으로서 제6식보다 한 단계 깊은 마음의 세계이다. 말나식은 미세한 생각, 비언어적 생각을 할 수 있는 의식이며, 모든 집착은 말나식의 ‘나’라고 하는 자아집착의식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것이다. 


말하자면 말나식은 집착이 전제된 자아의식이다. 그래서 말나식에서 아치我癡, 아견我見, 아만我慢, 아애我愛의 번뇌가 일어난다. 이런 이유로 말나식을 망식妄識(부정적 의식)이라고도 한다. 말나식보다 더 심층에 숨어있는 잠재의식이 제8식 아뢰야식阿賴耶識(alaya)이다. 제6식까지는 표층의식이고, 제7식과 제8식은 심층의식이요, 무의식이라 할 수 있다. 즉 제8식 아뢰야식阿賴耶識은 보통의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무의식의 최고단계이다. 


산스크리트어 아뢰야(alaya)는 ‘저장하다. 저장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 무엇을 저장한다는 말인가? 종자種子(bija=씨앗)를 저장하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을 통해서 하는 생각과 행동은 하나도 빠짐없이 종자로 변해 아뢰야식에 저장된다. 그래서 아뢰야식을 업장業藏(업의 창고) 혹은 장식藏識이라고도 한다. 즉 6식을 통해서 얻어지는 모든 작용이 제7식 말나식을 통과하여 제8식 아뢰야식으로 저장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아뢰야식은 모든 존재의 생명과 신체를 유지시켜 나가는 업력業力과 윤회의 심종자心種子가 저장되어 있는 곳으로 일생 동안 끊이지 않고 존재의 밑바탕에 붙어 있다가 알맞은 환경과 조건 등의 연緣을 만나면 독립적 業의 원동력이 된다. 마치 씨앗이 물을 만나 유전형질을 동일하게 가지는 싹을 틔우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통상 아뢰야식을 근식根識이라 부른다.


그리고 그보다 더 깊은 제9식 암마라식이 있는데 암마라식은 이러한 8식으로부터의 완전한 단절을 뜻하며 그 어떤 심종자도 없는 완전한 자유의 자리를 말하는데 그 자리가 이른바 불성佛性으로서 부처님께만 갖추어진 식이어서 제9식이 곧 부처의 마음이다.


          

* 칸트에 의한 선험 즉, 경험을 통하지 않고 알고 있는 것 중에서 본능을 제외한 것을 선험이라고 정의한다. 이를테면 선험이란 경험의 도움 없이도 알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순수이성비판, 칸트 지음, 최재희 역, 2021. 초판의 들어가는 말 55쪽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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