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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Aug 22. 2023

'앎'은 참인 판단인가?
(인식론을 위한 워밍업 7)

앎은 참인 판단인가?(인식론을 위한 워밍업 7)


‘프로타고라스’(Protagoras, 기원전 490년경/485년~기원전 415년/410년)는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소피스트다.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라는 그의 진술을 통해 인식과 판단에 대한 오래 지속될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 유명한 말은 각 사람의 개인적인 역사, 경험 및 기대가 평생 동안 발전하여 자신의 판단, 의견 및 진술을 결정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어떤 사람이 좋은 것, 나쁜 것, 아름다운 것 또는 정당하고 부당한 것에 대해 판단할 때, 각각의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각각의 판단을 내리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라는 진술을 좀 더 깊이 생각해 보자. 먼저 ‘소크라테스’는 이 진술에 대해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한다. 선생(‘프로타고라스’는 ‘소크라테스’보다 20년 정도 앞에 태어났고 이미 명성이 높았다. 따라서 「테아이테토스」에서는 ‘소크라테스’가 ‘프로타고라스’를 언급할 때 거의 선생, 혹은 그분이라는 호칭을 사용한다.)께서 자기 쪽에서 어떤 것을 판정하고서 그 어떤 것에 관한 판단을 내게 제시할 때, 그분의 주장에 따라 선생에게는 참이라고 합시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인 우리로서는 선생의 판정에 관한 '참'과 '거짓'의 판정관이 될 수는 없는 건가요? 아니면 우리는 시종일관 선생이 '참'인 판단만을 한다고 생각해야 하나요? 또 그도 아니면 선생이 '거짓'인 판정을 내리고 또 '거짓'인 생각을 한다고 가정하면서 선생과는 늘 반대되는 판단을 하여야 하는 건가요?(「테아이테토스」 플라톤, 정준영 번역, 이카넷, 2022. 103쪽)


즉,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생각이 가지는 문제점 중에서 가장 먼저 제기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인 누군가의 척도(여기서는 ‘프로타고라스’라고 하자)에 의해 '참'으로 판단된 것에 대한 판단이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조건 없이 '참'이라고 판단하여야 되는지에 대한 문제이다. 인간만이 가지는 보통의 이성이 명확하게 규정되고, 동시에 각 사례에 맞게 언제나 준비되어 있어도 현상은 불확실한 경우의 수가 생길 수가 있는데 하물며 명확한 기준도 없을 뿐만 아니라 각각의 문제가 가지는 자유로운 기준으로 추정해 보면 ‘소크라테스’의 문제제기는 매우 타당해 보인다.  


이런 과정으로 유추해 볼 때 '참'인 판단의 조건은 복잡하거나 아니면 모호해진다. 핵심은 ‘참’이라는 것의 기준인데 기준이 불분명한 상황에서 ‘참’과 ‘거짓’을 나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분명 ‘참’이라고 판단되는 사실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보통의 인식 수준에서도 한결같이 동의되는 ‘참’이라고 판단되는 것은 무엇인가?


한결같이 동의되는 ‘참’이라고 판단되는 것의 배후에는 역시 누구에게나 한결같이 동의되는 기준이 존재해야만 한다. 그런데 그 기준이 한결같은수록, 즉 매우 절대적일수록 반드시 반례가 등장하게 된다. 


대표적인 한결같이 동의되는 기준으로 '신의 의지'가 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적용되지는 않는다. 오직 신을 믿는 사람들에게만 이 기준은 한결같다. 그런 이유로 '칸트'는 ‘신’의 문제를 그의 철학 논의에서 완전히 제외시켰는지도 모른다. '칸트'는 오직 논증 가능한 수학, 물리학 등을 한결같은 기준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칸트'의 생각도 보통의 인식 수준을 넘어 존재하므로 보통의 인식 수준에서도 한결같이 동의되는 ‘참’이라고 판단되는 기준은 존재 가능한가?


하여 하는 수 없이 다시 '프로타고라스'로 회귀하게 된다. 즉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지극히 애매한 명제를 수용해야만 하는데 '소크라테스'는 여기에 다시 작은 반론을 제기한다.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한다. “그렇다고 여기는 이들보다 그렇지 않다고 여기는 이들이 더 많은 그만큼 그렇다기보다 그렇지 않게 된다.” (104쪽) 한 마디로 한다면 다수결에 의하자는 이야기다.


보통의 인식 수준에서도 한결같이 동의되는 기준을 다수결로 하자는 '소크라테스'의 이야기가 약간 엉성해 보이지만 수긍이 가는 면도 없지 않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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