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2024 천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준식 Dec 01. 2023

발분

發憤*



秋晡晻蒼深*(추포엄창심) 가을 오후 햇빛 깊고 푸르더니, 

滄天戾雲怪 (창천려운괴) 밤하늘 구름 찌푸려 괴이하다.

汔江準屍寢 (흘강준시침) 강물은 말라 주검처럼 누워있으니,

理裂天運乖 (이열천도괴) 도리가 깨져 천운조차 어그러졌도다.


2023년 12월 1일. 어제 오후부터 저녁까지 세상 풍경 속에서 이즈음을 읽는다. 문득 『장자』의 ‘발분’을 생각해 본다. ‘발분’이란 화를 내는 것을 말한다. 


『장자』의 내용 중 대부분은 인간 ‘장자’가 가졌던 시대에 대한 분노의 다른 표현이었다. 이를테면 ‘장자’는 분노를 삭이고 삭여 ‘무용’이나 ‘무위’로 치환했을 뿐이다. 어찌할 수 없는 세상에 대한 ‘장자’적 해결 방법이었을 것이다. 하여 『장자』의 여러 이야기는 ‘장자’적 ‘발분’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굴원’의 ‘발분’은 다르다. 좀 더 구체적이고 직선적이다. 예를 들면, ‘굴원’의 분노는 나라를 염려하고 시절을 걱정하는 슬픈 분노였고, 소인배에게조차 따돌림과 공격을 번갈아 받은 외로운 분노였다. 아울러 재주를 품고 있어도 평가받지 못하고, 나라를 구하려 해도 가망이 없는 쓸쓸한 분노였다. 결국 ‘굴원’의 분노는 구체화된 권력을 향한 것이었다. 


오래 공부하고 또 생각하며 살아온 사람으로 세상을 보면서 분노하지 않는 것은 자기모순에 가깝다. 등 돌리고 눈 감는 것이 더 편한 방법인 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거대한 분노는 아니더라도 분노 한 자락 가지지 않고 산다는 것은 살아온 지난날들에 대한 가벼운 배신이다. 분노하고 더불어 분노의 해소를 위한 방향을 잡아가는 것이 곧 삶이다.     


晻이 '암'으로 독음하면 '어둡다' '막히다'의 뜻이 되고, '엄'으로 독음하면 일무광日無光, 즉 햇빛이 스러져 침침한 날이라는 뜻이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肯綮(긍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