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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Jan 06. 2024

지식과 직관

인식론을 위한 기초작업

지식과 직관


直感과 直觀은 혼동하기 쉽다. 일반적으로 직감은 대상에 대한 감각적 경험에 의한 반응이다. 그러나 직관은 사태나 대상에 대한 감각이나 더 나아가 사유를 거치지 않는, 즉각적이며 직접적인 반응이다. 한자는 다르게 쓰지만 영어는 이 두 가지를 거의 구분하지 않고 ‘Intuition’으로 표현한다. ‘Intuition’의 어원을 살펴보면 15세기 중반에 사용된 신학적인 용어로써 ‘intuicioun’(즉 ‘통찰력, 직접적 또는 즉각적인 인식, 영적 인식)이었다. 이 말은 라틴어‘intuitionem’(주격 intuitio)에서 유래되었고 이것은 ‘intueri’(고려考慮)라는 어간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 통설이다.


사실 모든 지식의 기초에는 직관이 자리 잡고 있다. 이를테면 직관 없는 지식이란 존재하기 어렵다. 우리가 알고 있는 천재들이 이루어 놓은 놀라운 성과 뒤에는 모두 이 직관이 자리 잡고 있다. 천재들은 그 직관을 논리적으로 증명하고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다시 과학적, 수학적, 논리적 방법을 사용했을 뿐이다. 때로는 음악이나 미술로도 표현된다. 우리가 잘 아는 뉴턴의 만유인력도 뉴턴의 직관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베토벤의 아홉 개의 교향곡이 그저 지난한 노력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작곡을 매우 열심히 공부한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위대한 직관이 작용했다는 것을 베토벤 음악을 들어 본 사람은 알고 있다.


우리에게 친숙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수학은 우리가 본질이라고 이해한 것을 '표현'하는 형식일 뿐이지 이해의 내용이 아니다"라고 말하고(‘생각의 탄생’,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미셀 루트번스타인 지음, 박종성 옮김, 에코의 서재, 2018. 25쪽) 있는 것처럼 직관은 우리가 읽고 듣고 보는 천재들에 의해 창조된 결과물의 근원인 것이다.


그러면 직관은 도대체 어떻게 발현되는 것인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직관의 수많은 배후 요인들 중에는 분명 ‘통찰력’이 존재한다. 통찰(洞察, Insight)이란 예민한 관찰(acute observation)의 바탕 위에 추론推論(deduction)과 안목眼目(discernment)이 더해지고, 거기에 당사자의 인지(perception) 능력과 충분한 지성(intellection)이 연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서 통찰력이란 이러한 능력의 총합을 의미한다.  


지식이 통찰력에 기초한 직관의 작용이라면 과연 보통의 우리에게 지식이란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안타깝지만 우리에게 있는 지식의 90% 이상은 습득(배움과 익힘)의 산물이다. 저 유명한 공자께서도 배우고 익혀야만 한다고 말씀하셨다.(學而時習之~) 따라서 우리는 일정한 경로를 통해 지식의 세계에 접근할 뿐이다. 그 경로 중 알려진 것은 다음과 같다.


일반적으로 지식은 “참(True)이며 믿을 수 있고(Belief), 정당화(Justified)된 확인절차를 거친 것” 다시 간략히 말하면 “정당화(J)된 참된(T) 믿음(B)”이 지식이라고 정의된다. 정의된 지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시 수많은 문제(참, 믿음, 정당한, 확인절차 등)를 규명하여야 한다. 하지만 이 정의는 게티어(Edmund Gettier, 1927~2021)라는 철학자의 3쪽짜리 논문에 의해 위기를 맞이하고 만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알고 있다는 것의 배후는 이렇게 복잡하다. 어쨌거나 통찰력은 느낌이나 감정과 연결고리를 가지는데 일반적으로 지식이 명철한 이성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우리에게 감정적 연결고리로 이어지는 것이 당황스럽기는 하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지식은 우리로부터 출현한 것이 아닌 습득의 산물이라고 본다면 그것이 감정적 연결고리를 가졌다고 해서 뜨악해 할 이유가 없다.


결국 우리는 직관이 직감과 전혀 다른 의미가 아니라는 것에 도달하고 만다. 모두에 밝힌 직감이 대상에 대한 감각적 경험의 반응이라고 정의한 것에 비춰 본다면 직관의 바탕이 되는 통찰은 이 두 개의 개념 사이에 존재하는 다리와 같은 부분이 될 것인데 통찰이라는 개념 밑으로 파생되는 상상력, 관찰, 유추, 변형 등의 작용에 대하여 깊이 논의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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