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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Jan 14. 2024

상상력과 관찰에 대하여

인식론을 위한 기초작업(11)

상상력과 관찰에 대하여



앞 선 글(2024년 1월 6일)에서 우리는 직관이 직감과 완전히 다른 의미가 아니라는 것에 이르렀다. 즉 직감이 대상에 대한 감각적 경험의 반응이라고 정의한 것에 비춰 본다면 직관의 바탕이 되는 통찰은 이 두 개의 개념 사이에 존재하는 다리와 같은 부분이 될 것인데, 통찰이라는 개념 밑으로 파생되는 상상력에 대하여 논의해 보기로 한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하루는 피카소가 기차를 타고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그런 경우에 흔히 일어나는 일이지만 옆 좌석의 신사와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 승객은 자신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상대가 누군지 알고 나자 현대예술이 실재를 왜곡하고 있다면서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러자 피카소는 그에게 실재라는 것의 믿을 만한 본보기가 있다면 그것을 보고 싶다고 했다. 승객은 지갑 크기의 사진을 한 장 꺼내며 이렇게 말했다. "이거요! 진짜 사진이죠. 내 아내와 정말 똑같은 사진이오." 피카소는 그 사진을 여러 각도에서 주의 깊게 들여다보았다. 위에서도 보고, 아래로도 보고, 옆에서도 보고 나서 피카소는 말했다. "당신 부인은 끔찍하게 작군요. 게다가 납작하고요."

(‘생각의 탄생’,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미셀 루트번스타인 지음, 박종성 옮김, 에코의 서재, 2018. 46쪽)


피카소에게 사진을 보여 준 그 신사는 사진이야말로 실재하는 사물, 그대로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 신사가 보여 준 것은 피카소의 말처럼 얇은 종이 위에 실재의 사물이 상당한 비율로 축소된 것에 불과하다. 이 장면에서 누가 더 상상력이 뛰어난 것인가?


사진을 보여 준 신사는 실재하는 자신의 부인이 이 사진이라고 강력하게 믿고 있지만 사진은 그저 사진일 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 본다면 상상력이 없지도 않다. 그 얇고 작은 종이 위에 일정한 비율로 축소된 사람이 자신의 부인이라고 믿는 것은 언제나 그 실재의 대상을 보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인데 그 보고 느끼는 상황을 사진이라는 도구를 통해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상상력일까? 


우리가 피카소의 그림에서 느끼는 피카소의 상상력과 이 신사의 상상력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사진을 실재라고 믿는 신사의 상상력에는 상상력이라고 부를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인 창조적인 요소가 결여되어 있다. 창조적이라 함은 사실에서 즉각적으로 알아차릴 수 없지만 사실을 토대로 하여 만들어질 수 있는 바탕이 되는 사실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사실을 말한다. 


따라서 사진에서 자신의 부인을 습관적으로 상상한 신사에게는 우리가 말하는 상상력은 전혀 없는 셈이다. 아마도 피카소의 이야기를 그 신사는 전혀 알아듣지 못했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상상력은 치열한 사실의 탐구에 기초하여야 하고 그 기초를 바탕으로 전혀 새로운 사실을 구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러한 상상력은 과연 무엇을 기초로 하는가? 상상력이 치열한 사실의 탐구를 기초로 하려면 가장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관찰이다. 관찰은 각각의 대상을 정확하게 보는 것으로부터 대상들 사이의 유기적 관계와 그 관계로부터 펼쳐지는 새로운 상황에 이르기까지의 광범위하고 세밀하며 유기적인 작용이어야 한다. 


이렇게 관찰이 이루어지면 그것으로부터 발생한 정보를 바탕으로 창조적, 즉 새로운 대상을 형상화하는 과정으로 이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인류학의 하위 연구 방법 중 하나인  Ethnography가 관찰을 통한 형상화에 이르는 여러 연구방법 중 하나이다.(질적연구방법론 II: Methods. 김영천, 아카데미프레스. 2013)


김영천(진주교육대학 교수)에 따르면 에스노그라피란 “일상적 세계들을 이해하고 기술하는 연구방법”(위 책 1쪽)이라고 기술되어 있는데, 이 말에 기초하여 에스노그리피를 정의해 본다면 자신의 주위에 나타난 모든 대상들을 빠짐없이 관찰하고 그것을 기록하여 그것으로부터 유의미한 상황이나 흐름을 형상화해 내는 작업일 것이다.


에스노그라피를 통해 획득된 대상의 정보를 창조적 상상력으로 발전시키는 과정에는 다시 유형의 인식이 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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