溘聞雲龍梅之談萬物所與(합문운룡매지담만물소여)
문득 운룡매 이야기를 들으니 만물이 그와 같다.
冬朝遇緣起 (동조우연기) 겨울 아침 우연히 연기를 만나니,
茶香洩自寂*(다향예자적) 고요한데 차 향기만 몽글몽글.
省勵滅分別*(성려멸분별) 돌이켜 분별심을 없애려,
奕攝初不明 (혁섭초불명) 모두 쥔 듯 하나 근본은 어둑하구나.
2024년 2월 2일 아침. 어제저녁 페북에서 #운룡매 소식을 들었다. 이수디크라트 대표이신 #이미경 선생께서 지난해 그 자리에서 본 매화가 다시 꽃을 피웠다고 전해주신 것이다. 오전에 우체국을 핑계 삼아 한걸음에 달려가 매화를 보니 지난해 그 매화가 다시 꽃을 피웠다. 이 운룡매가 있는 곳은 진주교육청 뒤편, 아늑하고 정감 있는 찻집 #‘수류헌’이다. 수류헌을 예술공간으로 만드신 #김수동 대표께서는 이 매화를 꽃피우기 위해 한겨울 온 마음으로 매화를 지켜 마침내 이렇게 꽃을 피우게 하셨다. 아침 향기로운 차도 한 잔 내려 주셨다.
꽃이 피는 순간은 우주가 열리는 그 순간과 다르지 않다. 생명체가 가진 가장 수승殊勝한 것을 이 순간에 집중시키는 것이니, 어찌 이 순간을 찬탄하지 않으리. 하지만 꽃은 반드시 진다. 이 또한 생명체의 순수한 본질이다. 꽃 피고 지는 그 절대의 순간을 함께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순간을 기억한다는 것은 또 다른 생명체로써 우리가 가진 의무에 가깝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포섭하는 것은 역시 ‘연기’다.
연기緣起는 범어 프라티트야삼무파다(pratītyasamutpāda)를 뜻에 따라 번역한 것으로 인연생기(因緣生起: 인과 연에 의지하여 생겨남, 인연 따라 생겨남)의 준말이다. 프라티트야의뜻은 '의존하다'이고 삼무파다(samutpāda)는 '생겨나다 · 발생하다'인데 한자 뜻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연기란 ‘그것’은 ‘이것’을 의존하여(조건으로 하여) 일어나는 관계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잡아함경雜阿含經』에서 부처(석가모니)께서 이르기를 연기법緣起法은 자신이나 다른 깨달은 이[如來]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며, 법계(우주)에 본래부터 항상 존재하는 [常住] 법칙[法]이라고 말하고 있다. 연기경(緣起經)에는 이 연기의 실체를 12 연기로 풀이하고 있다. 12 연기란 무명(ignorance)으로부터 시작하여 행(mental, formations), 식(consciousness), 명색(name and form), 6입(six sense gates), 촉(contact), 수(feeling), 애(desire), 취(attachment), 유(becoming), 생(birth), 노사(decay and death)의 위계를 말한다. 이 12 연기는 각각 순행(유전연기) 하기도 하고 또는 역행(환멸연기)하여 우리에게 드러나고 소멸해 간다.
* 洩을 ‘예’로 읽으면 ‘몽글몽글 피어오르다’는 뜻이 되고 ‘설’로 읽으면 ‘새다’라는 뜻이 된다.
* 분별(심): 자신의 주관에 따라 사물을 나누는 태도 혹은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