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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Feb 15. 2024

窮坐實際中道床

1.     無量遠劫卽一念무량원겁즉일념


어제 멀리서 온 지인이 지나가는 투로 한 말이 오늘 내내 생각이 난다. 


“김 선생은 왜 교장으로 그만두지 않았어? 교사들이 모두 교장으로 은퇴하고 싶어 하는데……”


오늘 생각해 보니 스스로 답을 구할 수 없다.


나는 왜 기어코 교사로 돌아와서 정년을 맞이하려 하는가? 교사로서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무엇 때문에 이 길을 가고 있는가? 교사로서 나는 정말 제대로 교사의 길을 가고 있는가? 교사로서 나는 일상에 매몰되어 있지는 않은가?


하루 종일 뒤척 뒤척 생각이 복잡하다.


교육이란 참 난감한 의제임에 틀림없다. 방법이나 목적, 수단이나 태도가 역사와 공간에 따라 너무나 달라지고 그 각각이 언제나 선이기도 하고 또 늘 악이기도 하다.


장자 내편, 다섯 번째 이야기 덕충부德充符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왕태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인데 내가 교사이기 때문에 이 이야기가 그저 이야기로만 들리지는 않는다. 


노나라에 발이 잘린 왕태라는 자가 있었다. 직접 누군가를 가르치지도 않는데 노나라를 양분할 만큼 따르는 자가 많고, 공자에 버금가는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르며 그를 만나는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충만한 마음으로 돌아온다. 그에게는 말로써 가르치지 않고도 힘써 알려고 하지 않아도 충만한 어떤 것이 있었던 것이다. 


말이 필요 없는 가르침, 세상의 아름다움도 말이 아니며 지고한 깨달음도 말이 아니다. 노자도 장자도 불언지교不言之敎 망언득지妄言得志를 말하고 있다. 불교의 불립문자不立文字 역시 그러하다. 중니(공자)는 왕태를 이렇게 설명한다. “장차 천하가 그(왕태)를 스승으로 삼으며 그를 따를 것이라 하였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더라도 변하지 않는 이치가 그에게 있다.” 


하지만 이런 가르침이 21세기 지금에 적용될 리 만무하다. 그래서 나의 길이 사실 더 난감하다. 복잡함이 오후가 되니 머리를 아프게 한다. 리사명연무분별理事冥然無分別!


2.     衆生隨器得利益중생수기득이익


요즘 밖에 나가서 현수막을 보거나 T.V뉴스를 들으면 우울한 기분이 가시지 않는다. 나이 탓인가? 이미 봄이 온 듯한 춥지 않은 날씨 탓인가? 아니면 시대 자체가 우울한 탓인가? 알 수 없는 무거움이 내 마음을 지그시 누르고 있는 기분이 하루 종일 계속되고 있다.


총선이 다가오는지 거리에 벌써 시뻘건 점퍼를 입고 이리저리 손을 흔드는 인사들을 본다. 이름을 크게 새긴 누런 어깨띠를 두르고 당의 공천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 저 사람들에게 민주주의는 사람들을 우롱하는 것쯤으로 생각될지도 모르겠다. 이때 반짝 자신을 알리고 천만다행으로 공천을 받으면 이 경상도 땅, 어디서도 거의 국회의원이 된 셈이니 그들에게 거리에서 인사하는 저 일은, 저들이 낮추고 열심히 일하겠다는 말이 아니라 당의 공천을 받아야 하니 나를 기억해 줘!라고 떼쓰는 일이거나 또 아니면 당의 공천 때문에 지금 내가 숙이는 거야! 너희들이 그걸 알아줘야 해!라고 하는 절반은 협박처럼 내게는 다가온다.


단언컨대 현재의 우리 정치 상황은 해방공간과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오히려 제헌국회의원을 뽑던 5.10 선거 당시의 순수함 조차 잃고 말았다. 언젠가 그리고 자주 이야기 하지만 진정성 없는 정치는 공허하다. 현재 이 땅의 정치 현실에서 그 어떤 진정성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정치현실이 이러하니 그들이(국회의원) 만든 법이 온전할 리 만무하고, 그 법에 의해 시행되는 각종제도가 공정할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할지도 모른다. 이 땅의 현실 문제 중 80~90%가 이 잘못된 법에 의해 움직이는데 인구절벽, 청년실업, 교육으로 인한 차등화 및 신분의 고착, 노동문제, 남북통일 문제 등은 바로 그런 문제의 전형으로 볼 수 있다. 당리당략에 따라 현명함과 냉철함을 아낌없이 버리는 국회의원들을 보며 이 땅의 정치현실에 절망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여당, 야당 가릴 것 없이 현역 국회의원들 중 대부분은 젊은 시절부터 이 나라에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들이다. 그들은 국회의원이라는 고지에 오르기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버리거나 바꾼다. 그리고 국회의원이 되는 순간, 지나온 그들의 과거는 제로(0)가 되고 오직 정치라는 바둑판의 검고 흰 돌이 되어 권력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뿐이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알량한 정치적 권력과 금전적 시혜가 따르면서 검은 돌, 흰 돌의 운명에 완전히 정착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4월 초 까지 꽤 시끄러운 지금의 풍경이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우울함이 조금 더 심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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