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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Feb 11. 2024

명절 후기

명절 후기


1.     조상


누구에게나 조상은 있다. 아니 반드시 존재해야만 지금의 자신이 존재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조상에 대한 예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매우 신성한 것으로 여겨진다. 해마다 우리나라는 두 번의 큰 명절(법정 공휴일)을 맞이한다. 설과 추석이다. 설과 추석은 세부적인 의미는 조금 다를 수 있지만 농경사회의 전통이 그 중심에 있다. 


물론 의미가 약해진 다른 명절도 대부분 농경사회의 유물들이 대부분이다. 다가오는 대 보름, 그리고 단오, 동지 등이 대체로 그러한 맥락으로 이해될 수 있다. 농경문화에서 조상과 관련 있는 중요한 것은 매장의 습속이다. 시신을 땅에 묻고 그 위에 흙을 쌓아 올리는 것은 유구한 역사를 가진다. 농경사회는 이동이 없는 사회다. 한 곳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죽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그것이 대대로 이어져 같은 성씨와 같은 풍속이 이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 수많은 무덤이 있다.


유목민들에게는 중요한 기준이 목초지인가 아닌가 가 중요하다. 더 좋은 목초지를 발견하면 이전의 땅을 아낌없이 버리고 더 좋은 목초지로 이동해 간다. 많은 가축과 자신들의 삶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농경을 하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좋은 땅을 선택한다. 그래서 풍수와 지리를 살펴 매우 신중하게 터전을 잡는다. 한 번 정하는 순간 아주 오래 그곳에서 삶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죽은 이후에도 영원히 그곳에 있어야 한다. 


우리 민족은 대대로 농경민족이었다. 그래서 자신이 태어나고 저란 터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미 그 터전을 떠났어도 우리는 끊임없이 그 터전으로의 회귀를 꿈꾸며 살아간다. 우리 몸 어딘가에 감춰진 고향으로 향하는 본능이 이런 명절을 통해 유지되거나 강화된다. 비록 일부 사람들이 그러한 습속으로부터 벗어났거나 잊어버렸어도 아직은 많은 사람들이 이런 명절날에는 자신의 터전(부모가 살고 있는 그 어딘가도 비슷한 의미다.)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2.     제사    


사실 명절 제사의 핵심의미는 함축에 있다. 즉 사람이 돌아가신 날에 지내는 기제忌祭를 압축하여(동시에 돌아가신 모든 조상을 생각하며) 지내는 의례다. 그도 그럴 것이 명절 제사는 5대(나를 기준으로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고조부모)까지의 모든 돌아가신 어른들을 한꺼번에 모시기 때문이다.(그 위의 조상들은 직접 묘소를 찾아 인사를 드린다.) 그러므로 기제에서 기본이 되는 축문을 읽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때로 읽는 집도 가끔 있기는 하다.) 그리고 제례를 주관하는 제주가 올리는 술 한잔만 올리고, 제사에 참여하는 각 사람들의 술을 여러 번 올리지 않는다.(조선 예학과 관련된 문서의 공통된 내용, 류경휘柳慶輝(1652~1708)의 가례집설家禮輯說 등)

   

뿐만 아니라 이런 문서들의 공통된 내용은 명절 제사에 쓰이는 음식의 종류와 개수를 최대한 절제하여 검박을 강조한다. 흔히 말하는 기름에 지지거나 튀긴 음식은 아예 언급이 없는 문서도 많다. 이유는 자명하다. 당시는 식용유라는 개념조차 없었고 또 그런 기름도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나의 10대 이전만 해도(60년대~70년대 초반) 내가 본 음식 조리용 기름은 들기름, 참기름 그리고 미강유(쌀 겨 기름)가 전부였다. 그 귀한 기름을 음식을 지지거나 튀기는 데 사용할 만큼 기름이 많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나는, 3~40대까지 엄청난 전통 속에서 자란 탓에 제사와 관련된 의례를 금과옥조로 여기며 살았다. 하지만 부친께서 돌아가시고 10여 년 전 모친까지 돌아가시자 나름 대대적인 개혁을 했다. 지금은 일 년에 딱 두 번, 즉 명절날만 제사를 모신다. 그것도 늘 우리가 먹는 밥과 반찬으로 간소하게 차려서 제를 올린다. 조상을 모시는 일은 정성이지 절차나 격식이 아니라는 것을 50이 넘어 비로소 깨우친 것이다. 몇 년 전에는 고향 땅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모든 분묘를 고향 입구에 작은 곳에 평장平葬으로 모셨다. 9대조 이후로 약 40 여기의 묘가 한 곳에 있다.(오래되어 잃어버린 묘도 많다.)일 있을 때 묘소에 가서 인사드리기가 참 좋다. 물론 시제철에는 더 없이 좋다.


3.     순환


언젠가 나도 반드시 죽는다. 이번 명절에는 딸, 아들에게 우리 부부의 사전연명의료 의향서에 대해 설명하고 그것을 실행하겠다고 이야기했다. 아이들은 부모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라 어두운 기색이 역력했지만 삶과 죽음이 거대한 순환임을 이야기하고 그저 피해야 할 일이 아니라고 설득했다.


오전에 아이들은 각자의 터전으로 되돌아갔다. 늘 그랬듯 우리 부부만 집에 남아 각자의 일을 하고 있다. 


표지 그림은 Paul Huet(폴 위에)의 Le Gouffre(틈), 1861. Oil on canvas, 125cm212cm, 오르세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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