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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May 11. 2024

3권 머리말(1)


중학교 철학 제3권(5장 인식의 그림자) 원고를 대충 완성하며...... 


중학교 철학(제1권, 2권 교육과학사, 김준식 지음, 2022, 2023)은 지난 2020년 중학교 교장이었던 시절 아이들과 수업을 통해 이루어진 이야기들을 모은 것으로 시작되었다. 중학교 아이들과 수업을 했기 때문에 책의 제목은 자연스럽게 ‘중학교 철학’이 되었다. 


2022년 중학교 철학 제1권(전체 3장으로 이루어졌다. 1장 나를 찾아서, 2장 존재에 대하여, 3장 자유, 이성, 권력)을 시작으로 2023년 제2권 (4장 변증의 산맥) 발행하고 중학교 교장 임기 4년이 끝이 났다. 처음 철학 책을 쓰기 시작했을 때 중학교 아이들에게 부담을 줄이는 의미로 책의 분량을 가볍게 하여 다섯 권으로 나누어 출판하기로 설계하였는데 중학교 교장을 마치고 나니 3권 쓰기가 사실 매우 싫어졌다. 학교를 고등학교로 옮긴 것도 이유지만 교사로 돌아와 해야 할 일은, 교장 시절과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많아 시간을 내기가 사실상 어려워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스스로 한 약속이기 때문에 3권을 쓰지 않는 것에 대한 상황을 스스로에게 설득하기가 어려웠다. 고민 끝에 용기를 내어 2023년 10월부터 다시 지난한 글쓰기를 통해 중학교 철학 3권(5장 인식의 그림자)을 시작했고, 마침내 2024년 5월 초에 대강의 틀을 세우게 되었다.         


이번 작업은 중학교 아이들과 수업을 통해 이루어진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자칫 매우 난해해질 위험이 더 커졌고 동시에 주제 충실도가 떨어질 위험도 크다. 하지만 지난 2021~2023년 동안 아이들과 수업한 경험과 기억을 통해 가능한 내용을 쉽게 쓰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인식론은 철학의 여러 부분 중에서도 매우 난해한 영역이라 생각만큼 쉽게 쓰이지 않았음을 자인하다. 


스스로 이러한 과정에 있음을 위로하고 또 용기를 주면서 3권 출판을 위해 그 머리말을 써 본다.  


3권 머리말(1)


여름이 다가오는 계절이다. 여기저기에서 다양한 꽃들이 피어나고 나뭇잎들은 녹색이 짙어지고 있다. 이렇게 시시각각으로 변화하고 있는 자연을 보면서 우리는 여름이 다가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이렇게 자연의 변화를 감지하고, 그것을 수용하여 계절의 변화를 알 수 있게 하는 과정은 어떠한 경로를 가지며 각 과정은 어떠한 작용을 통해 계절의 변화라는 새로운 지점에 이르게 하는가? 인식認識의 문제가 발생하는 지점이다. 


앞서 이야기한 “꽃들이 피어나고 나뭇잎들은 녹색이 짙어지는” 과정은 자연현상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자연현상을 엄밀하게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 자연현상을 파악함에 있어 우리의 불완전한 지각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불완전한 지각과 실체적 자연현상의 차이는 언제나 철학적인 문제를 동반하였고 서양의 고대 철학자들에 의해 고안된 이원론은 지금까지도 서양철학의 강력한 사고의 얼개가 되기도 했다.


플라톤식 이원론으로 말하자면 실체적 자연은 이데아이고 우리의 지각에 의해 파악되는 자연은 이데아의 그림자이며, 다시 그 자연에 이데아가 분유分有되는 정도에 따라 실체적 자연의 성질이 결정된다는 논리구조가 바로 이원론적 사고의 얼개이다. 


그러면 꽃이라는 자연현상으로 이야기해 보자. 꽃에 대한 인간의 지각은 시각이나 후각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후각이 우선할 수도 있고 시각이 우선할 수도 있다. 5월에 주로 피는 아카시아의 예를 들어보자. 아카시아를 지각함에 있어 최초의 지각은 아마도 후각일 것이다. 후각으로 시작된 지각의 다음 단계는 시각이다. 


아카시아 꽃이 일단 후각으로 지각되는 순간, 우리는 아카시아에 대한 ‘이전의 경험을 동원하여 매우 빠른 속도로 그 향기의 상황을 파악하게 된다. 파악을 통해 도출된 일련의 생각은 대상물인 아카시아를 시각을 통해 탐색하게 한다. 시각에 의해 탐색된 아카시아 꽃의 색깔, 꽃의 개화 정도와 후각에 의해 탐색된 향기의 농후 정도를 이전 자료와 비교 분석하면서 현재의 아카시아의 상황을 판단하고 이전의 경험 위에 겹쳐놓음으로써 최종적으로 현재의 아카시아를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길어야 1초도 걸리지 않지만, 현재 수용된 지각의 배후에 존재했던 이전 경험(기억)은, 현재 지각에 의해 파악된 상황에 매우 다양한 조건과 상황을 제공하여 최종적으로 현재의 아카시아라는 꽃의 실체를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우리는 인식認識(영 cognition, 독 Kognition)이라고 표현한다.


문학작품 속에 묘사를 보면 좀 더 확연하게 기억과 인식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Marcel Proust(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À la recherche du temps perdu(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 마르셀은 홍차에 적신 과자 마들렌의 냄새를 맡고 어린 시절, 시골집에서 할머니가 차에 적셔주곤 하시던 마들렌 조각이 생각났다고 회상한다. 이 에피소드에 관한 프루스트의 언급은 이러하다. “차에 적신 과자의 맛은 죽은 시간들이 숨어 있는 은신처의 맛이다” 합리적 지성으로서는 되찾기 어려운 차와 마들렌에 대한 기억을, 최초 마들렌 인식의 과정에서 개입된 과거의 지각이 현재의 지각과 동조하는 순간, 마르셀의 인식 속에 저장된 이전의 마들렌이 되살아 난 것이다. 이를테면 인식의 재생인데 이러한 재생을 통해 드러난 인식은 새로운 과정을 겪으면서 다시 저장되고 동시에 상황에 따라 재생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해 보면 인간의 인식은 무지향성이며 동시에 무목적적이다. 단지 파악된 인식을 분류하는 과정에서 방향과 목적이 파악될 뿐이다. 단계적으로 인식된다는 것은 결과론에 가깝다. 직관은 단계적 인식의 중요한 반대 증거이다. 이 복잡한 인식의 세계와 그 그림자를 지금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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