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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May 26. 2024

일요일 오후

일요일 오후


1.     일상을 위한 음식

어제부터 비 예보가 있었고 비는 오후 늦게 가늘게 내리기 시작한다. 일요일이지만 방송 통신 고등학교 출석 수업이 있어서 학교에 다녀왔다. 일요일이 다 날아간 느낌이다. 그래도 집에 오는 길에 시장을 들러 저녁거리를 사서 일요일 저녁을 제법 거하게 먹었다. 


음식을 조리하는 것은 오로지 나의 생각이지만, 매우 가치 있는 일들 중에 하나다. 여러 가지 재료를 다듬는 과정에서부터 최종적으로 음식이 완성되는 단계까지 어떤 과정도 함부로 할 수 없다. 재료를 알맞게 자르고 양념을 이용하여 음식이 완성되는 전 과정이 전체적으로 여러 악기가 조화롭게 어울려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것과 다르지 않다. 개인적으로 20년 이상을 일상을 유지하는 음식을 만들어오면서 특별한 때 특별한 음식 한 두 개를 만드는 것과 일상을 유지하는 음식을 만드는 것의 차이를 잘 알고 있다.  


요리는 사실 전형적인 일본식 조어다. 의미는 먹기 좋게 가공한 음식이나 가공 행위 자체를 말한다. 아마도 조리調理가 더 본래 의미에 가깝고 포괄적인 말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조리든 요리든 모호한 한자어가 아니더라도 ‘음식을 만든다’라는 말을 쓰는 것이 더 알기 쉽다. 


어쨌거나 저녁을 맛있게 먹고 커피를 한 잔 하고 소파에 기대어 뉴스를 본다. 뉴스의 모든 꼭지가 기형적 혼돈만 가득하다. 하기야 아름다운 일과 행동은 이 시대 너무 귀한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가끔 아름다운 이야기를 내 보내는 뉴스도 있지만 앞서 말한 기형적 혼돈의 늪에 빠지고 만다.


2.     일상의 순간

Knabe floht seinen Hund, oil on canvas mounted on wood, 35 × 28 cm  Aite Pinakothek

2014년으로 기억한다. 독일 뮌헨(독일 식으로 뮌센)에 있는 피나코테크라는 미술관을 며칠 동안 천천히 둘러본 적이 있다. 오래된, 새로운, 그리고 근대(Alte, Neue, Moderne)로 구분된 미술관에 참 많은 작품들이 있어서 내심 부러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많은 그림 중에 일상의 순간을 묘사한 이 그림이 생각난다. 


Knabe floht seinen Hund


그림 제목으로 보자면 소년이 개를 자신의 무릎에 뉘어 놓고 털 사이에 낀 벼룩(아마도 이 <슬蝨>를 이렇게 부른 것 같다.)을 잡아내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이다. 정면 탁자에는 그의 것으로 보이는 가죽 모자가 있는데 당시에는 모자가 신분의 상징이었으므로 모자로 보아 이 소년은 귀족은 아닌듯하다. 당시 귀족이나 부유한 계층은 벨벳 모자를 즐겨 썼는데 벨벳 모자는 렘브란트의 초상화 등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모자는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모자의 모양으로 보아 성인 남자의 것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그림을 그린 헤라르트 테르 보르흐(Gerard ter Borch, 1617–1681)는 1617년에 네덜란드 즈볼레(Zwolle)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가축시장으로 유명한 도시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일찍부터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화가였던 아버지(Gerard ter Borch the Elder) 밑에서 그림을 배웠다. 1632년 그의 나이 15세 때 암스테르담으로 가서 당시 이름 있는 화가였던 도이스테르와 ‘화장하는 여인’을 그린 피터르 코데에게 배웠다. 이듬해 해외로 나가 유럽의 주요 화파 및 최고 거장들과 교류했다. 영국, 독일,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을 방문하면서 예술적 감흥을 받는다. 그가 주로 그린 작품은 초상화와 일상의 장면을 묘사한 것들이었다. 그의 영향력은 뒤이어 등장한 베르메르(Johannes Vermeer)에게 미치게 된다. 


소년의 오른쪽 탁자 위에는 수첩과 잉크병과 펜이 보인다. 무엇을 기록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옷차림도 깨끗하지 않고 탁자보는 낡아 있으며 방에는 변변한 창 조차 없다. 아마도 지하 방 어디쯤에서 그 집의 하인 아들이 개의 벼룩을 잡아주고 있는 장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림의 내용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 그림의 핵심은 빛이다. 


테르 보르흐가 그린 그림들 중 대부분은 다소 어두운 실내를 배경으로 자연스럽게 자세를 취한 사람들의 모습을 차분한 분위기로 그린 것들이 많다. 이러한 경향은 빛의 효과를 이용한 당시의 화풍이었는데 테르 보르흐보다 약간 앞선 렘브란트처럼 배경을 완전히 무시해 버리고 일정한 곳에만 광선을 주어 강조하지는 않는다. 다만, 앞쪽 어디선가에서 비치는 광선은 모자를 밝게 비추고 소년의 머리 가르마와 금발을 빛나게 할 정도이며 화면 전체는 조금 밝아졌고 배경과 중심인물의 광량도 크게 차이를 두지는 않았다. 


빛이 들어오는 곳은 소년의 머리 위쪽 어딘가가 아니라 소년의 정면보다 약간 높은 위치가 분명하다 왜냐하면 소년이 앉아있는 의자와 소년의 그림자가 뒤쪽으로 제법 길다. 광선의 높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데 당시의 여러 그림들을 통계적으로 분석해 보면(독자적인 분석이다.) 머리 위쪽 어디에서 비추는 빛의 대상이라면 그 대상은 신성함, 즉 신과 관련될 공산이 크다. 그보다는 낮지만 그래도 머리 위에서 내려 비추는 광선의 대상이라면 왕과 귀족의 빛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보다 낮은 빛의 대상들(전체적으로 화면이 어둡고 구체적으로 광원이 애매한 것)은 서민들이다. 이 그림에서 비치는 빛이 바로 서민의 빛이다. 


테르보르흐는 젊은 시절 영국 여행 중, 당시 영국의 궁정화가로 영국에 있던 반 다이크를 만나면서 플랑드르 화풍에 대해 이해를 넓혔다. 그는 플랑드르 시기에서 로코코 회화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화가였다. 아직도 곳곳에 여전히 강력한 바로크와 매너리즘의 영향 속에서도 독자적인 사물과 빛의 해석을 통해 그만의 세계를 창조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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