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 2교시 비었다. 짧은 글을 쓴다.
정치와 무관하거나 모든 것이 정치이거나……
1. 아프리카 밀림 어딘가에서
인류의 기원이라고 여겨지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발견된 곳은 남아프리카인데 그 아프리카 대륙 북쪽에는 인류가 만든 가장 위대하고 동시에 거대한 석조 건축물 피라미드가 있다. 이를테면 아프리카는 인류의 시작점과 문명의 최고봉이 공존하는 위대한 대륙이다.
아프리카는 후진적인 원시의 대륙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보는 아프리카지만 여전히 거기에는 원시 이전의 순수가 살아 숨 쉬고 있고 언젠가 지금의 인류가 문명을 잊어버리는 순간 다시 생동하는 문명의 에너지를 제공할 대륙 임에 틀림없다.
매우 상대적인 세계에서 매우 절대적인 기준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고 재단하지 말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상은 지독한 가치의 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의 정치 상황을 보면서 문득 우리는 아프리카 밀림 어딘가를 헤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2. 오류의 발견, 그리고 수정…. 그 요원함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은 현재 거의 오류에 가깝다. 하지만 프톨레마이오스 사후 1500년 동안 뛰어난 천재의 절대 논리였다. 그 진리가 오류로 밝혀지는 과정은 멀고도 험했다. 진리로부터 오류를 발견하고 수정하기 위해서는 늘 냉철한 검증을 기초로 한다. 하지만 그러한 검증조차도 시대상황과 맞닿아 있다. 그러니 한 시대의 오류를 그 시대에서 발견하고 수정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러한 경우는 개인에 있어서도 다르지 않다. 스스로의 오류를 발견하고 그 오류를 수정한다는 것은 자신의 틀을 깰 수 있는 용기와 에너지가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이 용기와 에너지가 언제나 부족하다. 어쩌면 그 용기와 에너지를 스스로 회피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나의 사실을 놓고 의견이 다른 것은 그 사실의 문제 이전의 문제, 즉 사실을 보는 시선의 段差(단차) 혹은 그 시선과 직선으로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이 가진 의식의 문제인 것이다. 거기에는 다시 ‘가치’의 문제와 ‘이익 균형’의 문제 그리고 ‘감정’의 문제가 개입하게 된다. 아무리 객관적, 또는 실체적 진실이라도 이런 복잡한 과정의 끝에 빚어지는 판단의 태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 엄밀하게 말해서 이러한 개인적인 판단도 필요 없어지는 경우가 공론화다. 공론화되는 순간 최소한의 합리성조차 사라지고 오직 힘의 논리와 평균적 정의의 덫에 함몰되고 만다.
2024년 대한민국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