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
제법 거창한 이 책 제목, 즉 『국부의 성질과 원인에 관한 연구』 우리에게 익숙한 제목은 『국부론』이다. 이 책의 저자, '아담 스미스'는 영국의 정치경제학자이자 윤리철학자인데 우리에게는 흔히 경제학자인 것처럼 알려져 있다.
이 책의 구성이나 구체적인 내용을 밝힐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책 속에 이런 문장이 있다.
"우리가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 양조장 주인, 혹은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그들의 욕구 때문이다."
경제적으로만 본다면 이 말은 지금도 거의 유효하다. 하지만 좀 찜찜하다. 정말 이 말대로 푸줏간 주인, 양조장 주인, 혹은 빵집 주인의 이기적인 욕구만으로 이런 일들이 이루어질까?
18세기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결혼도 하지 않고 일생 동안 누군가를 단 한 번도 부양해 본 적 없는 이 책의 저자 ‘아담 스미스’가 이야기한 이 단순한 논리가 21세기 경제학을 전공한 이 나라의 일부 지식인에게 엄청난 영감을 주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흔히 '뉴 라이트'로 분류되는 일군의 경제학자들은 어림없게도 이 단순한 논리를 역사에 투영하여 마치 자신들이 역사학을 깊이 연구한 것처럼 우리의 근대사를 마음대로 재단하고 심지어 본질을 왜곡하는 만용과 오만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이 논리에 그들이 덧대 놓은 것이 자유다. 여기서 자유는 다음과 같다.
자유(自由: 스스로 自, 말미암을 由)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쟁은 오래전부터 계속되어 왔다. 영어의 자유는 ‘Liberty’와 ‘Freedom’인데 약간의 차이가 있다. ‘Liberty’는 ‘ability to do as one pleases’(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능력)으로 풀이된다. ‘Freedom’은 ‘having the ability to act or change without constraint’(제한 또는 제약 없이 바꾸거나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다(Online Etymology Dictionary © 2001-2022 Douglas Harper). 비슷한 의미 같지만 ‘Liberty’는 적극적인 의미가 강하고 ‘Freedom’은 다소 소극적인 의미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다양한 해석들이 있어서 사용하는 방향과 목적에 따라 의미가 약간씩 달라지기도 한다. (중학교 철학, 김준식, 2022, 교육과학사, 107쪽)
경제학에서 주로 쓰이는 자유는 당연히 ‘Liberty’다. 그러면 아담 스미스의 이기심과 이 ‘Liberty’ 즉 자유를 합쳐보자. 이를테면 푸줏간 주인, 양조장 주인, 혹은 빵집 주인의 이기적 욕구의 본질이 자유라는 의미가 된다. 좀 더 풀이하면 푸줏간 주인, 양조장 주인, 혹은 빵집 주인은 이기적인 욕구에 따라 고기와 술과 빵을 생산하고 그 대가, 즉 자본을 획득하고 그것으로 자신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아무런 제한이 없다. 이유는 자명하다. 바로 인간의 욕망에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자본주의다.
뉴 라이트는 이 관점을 우리 근대사에 적용한다. 일본이 우리를 침탈한 것도 일본의 입장에서 본다면 매우 합리적인 행동이 되고 그들이 우리의 모든 것을 수탈한 것도 역시 그들의 입장에서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다. 일본의 욕구에 따라 움직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본이 자신들의 좀 더 편리하고 빠른 욕구 충족을 위해 우리 땅에 도로를 놓고 철로를 놓았으며 전기 선로를 가설했는데 경제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이 일은 한반도 인민들에게 경제적 도움이 되었다는 이론을 구성한다. 일본의 욕구 실현을 인정하고 이것이 세게사적 인류 문명 발전의 과정이라고 강변한다. 거기에 우리의 민족 감정은 야만적 종족주의가 되고 만 것이다.
2024년 우리 공화국에서 일어나는 기이하고 불편한 상황은 그 연원이 매우 다양하다. 그중 하나가 위에서 말한 이런 이유도 있을 것이다. 관점을 뒤틀고 뒤집고 흩어 놓는 그들의 능력을 보며 민족적 윤리 의식이 결여된 좋은 머리만을 본다. 그 좋은 머리로 그들은 마치 아담 스미스가 말한 푸줏간 주인, 양조장 주인, 혹은 빵집 주인처럼 이기적인 욕구 충족을 위해 다른 모든 것, 이를테면 민족적 양심이나 윤리를 방치하고 심지어 파기한다. 무서운 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