遲遲不進(지지부진)
知不知卽怳 (지부지즉황) 모른다는 것을 아니 당황스럽고,
認無知易拉 (인무지이랍) 무지를 알고 나니 문득 꺾여버렸네.
路處處蕪沒 (로처처무몰) 길은 곳곳에 잡초 덤불이고,
對陡壁邈邈 (대두벽막막) 절벽을 마주하니 근심만 가득하네.
2024년 9월 4일 아침. 중학교 철학 4권(실존의 안개-가제)을 쓰기 위해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보고 있다. 하지만 늘, 아는 것이 없으니 당황스럽다. 중학교 철학 ‘실존’의 이야기는 앞서 지나온 ‘변증’이나 ‘인식’과 같이 인간 내면에 매우 깊숙하게 자리 잡은 이야기들이라 쉽게 다가 오지도 또 쉽게 다가 설 수도 없다. 아직은 ‘실존’의 주위만 맴돌고 있다. 나의 ‘무지’와 ‘부지’를 통탄하며 ‘지지부진’에 빠져 있다.
‘無知’와 ‘不知’에 대한 해석은 동양 고전에 자주 등장한다. 그중 『도덕경』의 내용에 터 잡아 이야기하자면 둘의 차이는 이러하다.(개인적 견해) 먼저 ‘不知’에 대하여 이야기하면 知는 ‘안다’는 뜻과 ‘완성하다’라는 뜻을 이중적으로 갖고 있다. 따라서 ‘不知’는 ‘알지 못한다’와 ‘완성할 수 없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그런가 하면 ‘無知’는 ‘구체적 사태의 해결에 대한 해결 방법이 없다’는 의미로써 이 의미를 확장하면 ‘특정 부분에 대하여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가 되고 여기서 더 확장하면 ‘내가 알고 있는지 조차도 모른다는 의미’로 확장될 수 있다. 위 글에서 認을 무지 앞에 놓은 이유이기도 하다.
‘실존’의 개념을 좀 더 알기 쉽게 녹여내기 위해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Sein und Zeit)’을 살펴본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난해하다. 야릇한 절망감이 밀려온다. 그 절망감은 이내 걱정으로 다가오고 그 걱정은 또 다른 걱정을 불러온다.(하기야 독일 사람들조차 독일어로 된 이 책을 보고 언제 독일어로 번역되냐는 이야기를 할 정도로 극강의 난해함을 자랑한다.)
4권 집필의 용기와 희망, 그리고 긍정의 감정은 멀리 사라지고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거기로 난 덤불과 잡초만 가득한 좁은 길이 내 앞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