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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Sep 12. 2024

존재와 시간(1)

 '존재와 시간'의 내용 정리를 순서없이 올릴 예정


Geworfenheit (던져짐)


이 세상에 던져진 우리는 던져진 원인을 알지 못한 채 마침내 죽어 간다.(Sein zum Tode) 세상에 던져진 우리는 끝없이 자신의 상황을 알아내려고 노력했고, 마침내 누구나 죽음이라는 지점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든 던져진 자들이 모두 죽는다는 자명한 방향은 파악했지만 각자의 죽음에 대한 구체적이고 분명한 지점은 아무도 가지지 못하고 끝없이 이어지는 현재에 다만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것이 우리의 실존일 것이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현상과 존재는 항상 그것과 상반되는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자연의 불변하는 질서이고 법칙이다. 우리의 실존에 상반되는 것은 죽음인가 아니면 시간성(Zeitlichkeit)인가? 존재자인 우리 주위를 둘러싸는 자연 역시 필연적으로 소멸의 방향으로 나아가지만 던져진 우리는 그 상황에 관심을 기울일 수 없는 처지로서 단지 세계성(Weltlichkeit), 즉, 주체와 객체의 분할(Subjekt-Objekt-Spaltung)로 파악될 뿐이다. 안타깝지만 우리는 우리 스스로 주체와 객체는 특정할 수는 없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유사 이래의 모든 철학이 인간이 '존재'로 이해하는 것에 대해 다양한 답을 제시했지만, ‘존재’에 대한 의미를 탐구하는 방식, 즉 ‘존재’와 ‘존재’의 관계에 기초한 ‘존재’ 질문을 제기한 적이 없다고 지적한다. ‘존재’가 항상 독립적으로 혹은 개별적인 것으로 존재할 것이라는 서양 철학의 오랜 전통을 비판한다. 특정 ‘존재’만으로는 그 ‘존재’ 관계를 이해할 수 없고 ‘존재’ 한다는 진술만으로는 그 ‘존재’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Sein und Zeit, M. Heidegger, 이기상 역, 까치, 1998. 서론: 존재의 의미에 대한 물음의 설명 일부 요약) 


Zeitlichkeit(시간성)


‘존재’를 다만 ‘존재’로만 상상하면 시간 과의 관계가 완전히 무시된다. 예를 들어 ‘존재’를 실체 또는 물질로 정의하면 ‘존재’는 오로지 현재와 관련될 뿐이다. ‘존재’하는 것은 현재이지만 과거에도 ‘존재’했고 ‘미래’에도 ‘존재’할 것이라는 이야기는 설명이 어렵게 된다. 이런 점에서 하이데거는 시간이 ‘존재’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조건임을 보여주려 한다. 간단히 말해서 시간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사용하는 망치는 다가오는 폭풍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집을 짓기 위해 판자에 못을 박는 데 사용되었다면 이때 망치는 단순히 철과 나무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성 속에서 이해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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